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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똑같은 맛 아이스크림으로 백사장 손님 끌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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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원칙 잃은 민주당 부동산 감세 전략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선거에서 두 당의 정책이 수렴하는 경향을 흔히 ‘백사장의 아이스크림 장사’로 비유한다. 아이스크림 장사꾼은 처음엔 서로 멀리 떨어져 좌판을 벌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중간 지점으로 모인다. 그래야 각자 자신의 왼쪽 혹은 오른쪽 손님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최소 차별화’ 이론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헤럴드 호텔링(1895~1973)이 1929년 발표한 ‘경쟁에서의 안정성’이란 논문에서 처음 증명했다.

근본 해법인 공급확대 외면한 채 #표와 정체성 사이 어정쩡한 타협 #종부·양도세 완화로 중도화 전략 #보수·진보 양쪽서 원칙훼손 비판

이 마케팅 이론을 정치학에 접목한 이가 미국의 공공정책학자 앤서니 다운스(1930~)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중도층 투표자를 겨냥하면서 공약이 엇비슷해진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라는 중도화 전략으로 대선에서 승리했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진보 운동권과의 결별을 표방하며 총선에서 승리했다. 2017 대선과 2020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 진영은 중도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결과가 최근 4·7 재·보선 승리로 나타났다. ‘30대, 0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선도 넓은 의미에서는 중도 공략 강화를 위한 보수의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쪽은 민주당이다. “민주라는 당명과 대통령만 빼고 다 바꾸자”는 모토로 당선된 송영길 당 대표는 키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한 종부세·양도세 완화는 그 첫 번째 해법이다. 종부세 대상을 상위 2%로 하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였다.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부동산 세제 개편이 내년 대선을 위한 ‘백사장 중간 확보 전략’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서울이 여러 가지 부동산 민심을 확산하는 중심인데, 거기에서 이렇게 큰 표 차이로 지고 과연 대선을 이길 수 있냐는, 정당으로서 현실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내 기류는 엇갈린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악화한 부동산 민심을 달래지 않으면 정권 교체를 피하기 어렵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 정책은 총체적으로 후퇴한다. 작전상 1보 후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내 친문 세력은 “보유세 강화 등 참여정부부터 이어져 온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내버렸다. 투기이익 환수나 자산 불평등 해소라는 당의 정체성과도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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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피적 처방이 부른 역효과

민주당의 부동산 세제 완화는 비단 이 세금과 직접 관련된 주택 소유자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여당 안이 현실화할 경우 종부세 대상자는 기존 52만5000가구에서 28만4100가구로 줄어든다. 혜택을 받는 24만여 가구가 다 민주당 표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자산 중상위층인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직접적 득표 효과보다는 정책의 유연성과 실용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중도층 외연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중도층에 먹힐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세금을 깎아줌으로써 악화한 부동산 민심을 무마하려는 표피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히려 정책적 무능을 드러냄으로써 ‘게’(지지층 확대)도 잃고 ‘구럭’(당의 정체성)도 잃을 가능성마저 있다. 획기적 공급 확대 같은 근본적 처방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 집값은 천정부지 오르고만 있다. KB 주택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6월 수도권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7억원을 넘어섰고, 서울 강북 14개 구 아파트도 9억원을 돌파했다. 민주당은 미리 정한 공급가의 6~16%를 내면 입주 10년 후 분양권을 준다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지만, 시장은 회의적이다. 10년 후 집값을 알 수 없는 데다, 민간 공급자의 사업 참여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부유세가 돼버린 보유세

더 심각한 문제는 표에 급급해 세제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당의 좌우·안팎에서 공통으로 제기되는 비판이다. 우선 ‘상위 2%’ 부과는 조세 법률주의에 위배된다. 법으로 정하도록 한 과세 대상과 과세 표준을 매번 시행령을 바꿔가며 확정해야 하게 됐다. 종부세 도입의 당초 목표와도 모순된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종부세를 도입했는데, 집값이 아무리 오르더라도 상위 2% 외에는 종부세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반대로 집값이 아무리 내려도 2%는 무조건 종부세를 내야 한다. 종부세가 상위 2%를 겨냥한 일종의 ‘부유세’로 변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98 대 2 편가르기’가 되고 말았다.

세제 개편의 또 다른 축인 양도소득세 개편도 문제를 안고 있다. 양도세 개편의 핵심은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비과세 기준선을 현행 실거래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고, 대신 양도차익이 5억 원을 넘기면 금액이 커질수록 장기보유 특별공제 혜택을 줄이는 내용이다. 지금은 10년 실거주할 경우 최대 80%까지 공제받았으나, 양도차익이 클 경우 70~50%로 낮추는 안이다. 그러나 이런 안은 장기보유자일수록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단기 투자를 억제하고 건전한 장기 소유를 장려한다는 부동산 세제 정책의 목표와 어긋난다.

근본 대책 없는 대증 요법이 문제

민주당의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정체성과 표 사이에서 원칙과 중심을 잃고 기형적 모습이 됐다. 세금 폭등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필요성과 서민·중산층 기반 정당이라는 당위성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타협했기 때문이다. ‘상위 2%’는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격 12억원으로 올리는 국민의힘 개편안과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국민의힘 안대로 하면 종부세 해당자는 상위 1.9%에 해당한다. 단기적 정책 효과는 비슷할지 몰라도 여당 안은 변칙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양도소득세 개편도 마찬가지다. 양도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실거래가 기준을 12억원으로 상향했으나 이럴 경우 보수 정당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지지층의 반발이 일었다. 이를 의식해 양도소득 공제 요건을 높여 과다 양도차익 과세를 강화했으나 이번엔 장기보유자 홀대 논란을 낳았다. 원칙 없는 표피적 처방과 섞어찌개식 해법이 자꾸만 엉키고 꼬여버린 결과다.

이념에 경도된 정책의 부작용을 고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중심 없는 대증(對症) 요법은 문제만 꼬이게 할 뿐만 표에도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백사장 아이스크림 장사’로 돌아가 보자. 중간 지점에 등을 맞대게 된 두 장사꾼의 아이스크림에는 어떤 차별점이 존재하는가. 기대하는 아이스크림 맛을 찾아 매대(賣臺)를 찾은 백사장 손님들이 실망해서 돌아설 가능성은 없을까. 부동산 문제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떤 차별화된 해법을 보여줄 것인가.

‘모호한 정책’이 표에 도움될까

중도층 표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이 몇 년 전 이뤄진 적이 있다. EBS 제작팀의 의뢰로 서울대 강원택 교수와 곽금주 교수가 수행한 실험이다. 사전조사를 통해 자신을 보수·중도·진보라는 생각하는 피실험자 99명을 3분의 1씩 모은 뒤 이들에게 무상급식, 한미 FTA, 대기업 규제, 경제성장 우선, 사형제도 등 20가지 이슈에 대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물었다.

이중 중도층의 응답을 더 들여다본 결과 이들은 각각의 사안에 비교적 선명한 찬반의 입장을 나타냈다. 가령, 무상급식을 지지(진보 입장)하면서도 대기업 규제는 반대(보수 입장)하는 식이다. 즉 중도층은 막연한 판단 유보의 집단이 아니라 각각의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지닌다는 것이다. 개별 사안에 대해 상반된 방향의 선택이 합쳐진 결과 중도가 됐을 뿐이다.

실험의 함의는 이렇다. 정당은 각각의 이슈에 대해 분명한 입장과 차별화된 정책을 가지고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논점 흐리기 전략으로 소구력을 얻는 것은 한계가 있다. 모호한 정책은 해당 사안에 대한 무능 내지 무책임만 보여줄 뿐이다. 문제는 각각의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는 일이다. 정치 행위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 버클리대 교수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레이코프는 말한다. “중도파의 신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조합만 존재할 뿐이다. 중도화 노선은 위험한 선택이며, 기계적 중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최악의 전략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에서도 이 말이 유효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