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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어부들의 지뢰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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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전익진 사회2팀 기자

전익진 사회2팀 기자

경기도 고양시 한강하구에서 조업하는 40여 명 어부는 요즘 ‘지뢰 공포’ 속에 생업에 나서고 있다. 강가에서 불과 수백여 m 거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오전 9시 50분쯤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고양시 일산동구 한강하구 장항습지 입구 부근이었다. 굉음의 원인은 지뢰로 추정되는 미확인 물체가 폭발한 것이었다. 50대 남성 A씨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가 난 장항습지는 최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이다.

사고는 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장항습지의 외래식물 제거와 환경정화 작업을 진행하던 중 일어났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 통제지역이었으나 2018년부터 민간에 개방됐다. 현재 생태 탐방로를 조성 중이다. 경찰과 군은 폭발물 종류와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고양시 장항습지 생태공원에서 지뢰탐색 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육군 9사단 공병대대 장병들. [사진 육군 9사단]

고양시 장항습지 생태공원에서 지뢰탐색 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육군 9사단 공병대대 장병들. [사진 육군 9사단]

35년째 한강하구에서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63)씨는 “요즘 지뢰 공포로 목숨 걸고 조업하러 나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강가에 그물을 치려면 풀을 베어내고 쓰레기를 걷어내야 하는데 지뢰가 겁나 물고기를 덜 잡고 말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하구에서 지난해부터 지뢰 폭발 및 발견이 잇따라 불안감에 시달리며 정상 조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7월 4일 오후 6시 49분쯤에는 이번 폭발 사고지점과 인접한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김포대교 아래 한강하구에서 북한군 지뢰가 폭발해 70대 남성 낚시객 B씨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한강하구에서는 지뢰 폭발사고 이후 군이 지뢰탐색 작업에 나서면서 같은 해 9월 17일과 28일 이번 폭발사고 현장 인근 대덕생태공원과 행주산성역사공원 일대에서 우리 군의 M14 대인지뢰를 잇달아 발견했다. 폭발하거나 발견된 지뢰는 홍수와 강물 범람으로 떠내려오거나 떠밀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고양시 행주어촌계 어부들은 지뢰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어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전한 어장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다. 고양지역 30개 시민사회단체도 지난달 21일 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지뢰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의 단위들과 연대할 것을 천명했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장항습지와 고양시를 위해 치열하게 활동해 갈 것도 선언했다.

어부들이 조업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한강 변과 습지에서 지뢰 사고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육군은 지난달 29일부터 장항습지 생태공원 2곳에 대한 2주간의 대대적 지뢰탐색 작전에 나섰다. 한강하구는 집중호우와 홍수·장마로 인한 지뢰 유실 취약지역이다.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지뢰 공포가 더 커지고 있다. 국방부·환경부·지자체 등 관계 당국은 한강하구 일대에 대한 항구적인 지뢰 안전대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전익진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