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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답지 않게 여주인공이 죽지 않는 오페라, 111년 만에 한국 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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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부의 아가씨’ 한국 초연의 연출을 맡은 니콜라 베를로파. [사진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한국 초연의 연출을 맡은 니콜라 베를로파. [사진 국립오페라단]

2013년 10월 빈 국립 오페라의 무대. 커다란 무지개색 열기구가 내려왔다. 공연한 작품은 푸치니의 1910년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다. 마지막에 등장한 열기구는 남녀 주인공을 태우고 다시 떠올랐다. ‘비극 전문’ 푸치니의 희한한 해피엔딩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무지갯빛이었다.

예술의전당 ‘서부의 아가씨’ 공연 #라보엠·토스카·나비부인과 결 달라 #탄광 배경 ‘스파게티 웨스턴’ 원조

생전에 흥행했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작품에서 살아남은 여주인공은 거의 없다. ‘라보엠’의 미미는 병으로 촛불이 꺼지듯 죽고, ‘토스카’의 토스카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나비부인’의 초초상은 단검으로 자결한다.

하지만 ‘서부의 아가씨’ 주인공 민니는 살아남을 뿐 아니라 애인인 남성 주인공을 구출해 함께 떠나며 작별의 노래를 부른다. 푸치니 오페라의 애잔한 비극을 기대하는 청중에게는 낯설다. 19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초연된 후 유럽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강한 여성 주인공인 민니가 총을 든 연습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

강한 여성 주인공인 민니가 총을 든 연습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

111년 만에 한국 첫 공연이 열린다. 1~4일 국립오페라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리는 무대다. 이탈리아 연출가 니콜라 베를로파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에서도 4~5년에 한 번 공연되는 작품”이라며 “실연 무대에서 ‘서부의 아가씨’를 딱 두 번 봤다”고 했다. 그가 ‘서부의 아가씨’를 연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를 중심으로 신선한 해석을 덧붙인 오페라 무대를 만들고 있다. 2018년엔 국립오페라단과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를 제작했다.

연출가가 봤을 때 공연이 드문 이유는 뭘까. 베를로파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떤 부분이 특히 어렵나.
“주인공이 셋인데 최정상급 성악가여야 한다. ‘라보엠’의 미미 역을 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100명이라면 민니 역은 2명 정도만 가능하다. 게다가 남성만 50여명 모이는 합창단의 노래도 어렵다. 오케스트라 규모도 크고 실력이 좋아야 한다.”(※푸치니 오페라 중 ‘투란도트’ 다음으로 센 여성 캐릭터인 ‘민니’는 성격이 강한 만큼 풍부하고 무게감 있는 소리로 노래한다. 20세기로 넘어온 작품이라 현대적이고 까다로운 음악이 많이 쓰인다.)
푸치니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가 더 어렵지 않나.
“아니다. 훨씬 쉽다. ‘투란도트’ 사운드는 강력하지만 음악이 더 직선적이고 오히려 대중적이다. 하지만 ‘서부의 아가씨’에는 강렬한 멜로디 창작이 있고, 소프라노와 테너의 이중창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정도로 어렵다.”
해피엔딩이라 공연이 잘 안 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럴 법하지만, 정확하진 않다. 청중은 결말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1막 사랑의 이중창, 2막의 아슬아슬한 포커 게임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을 처음 연출하는 의미는.
“연출 제의 자체가 드문 작품이라 기뻤다. 역시 드물게 공연하는 드보르자크 ‘루살카’,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도 한국에 어울린다. 성악가,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서부의 아가씨’는 미국의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50년 캘리포니아 산악 지대가 배경이다. 광부 50명의 합창단, 이들이 모이는 바를 운영하는 여주인 민니, 도적 떼 두목인 테너 딕, 이들과 삼각관계인 바리톤 잭이 등장하고 비중 있는 조연 10명도 출연한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작품이라는 점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의 원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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