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금리 인하의 역설…32만명이 '악마의 급전' 내몰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18:39

업데이트 2021.07.26 15:15

부산의 한 거리에 불법 사금융 전단지가 널려 있다. 중앙포토.

부산의 한 거리에 불법 사금융 전단지가 널려 있다. 중앙포토.

“다 돈을 못 빌려준대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요.”

일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지난해 폐업 신고한 김모(42)씨 얘기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가게를 접어야 했다. 이후 건설 현장을 뛰었지만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올해 초 월세 등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문을 두드렸지만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부업체에서도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김씨는 다급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으로 ‘급전 대출’해준다는 업체에 90만원을 빌렸다. 5개월 사이에 김씨 빚은 이자까지 합쳐 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김씨는 “매일 빚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30건씩 쏟아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저신용자 32만명이 ‘대출 난민’이 돼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씨가 된 것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다음 달 7일부터 법정 최고금리는 연 24%에서 20%로 낮아진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임기 초 연 27.9%였던 최고금리는 2차례 인하로 4년여 만에 7.9%포인트 하락한다.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낮추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양날의 검’이다. 금리 인하는 이자 부담을 줄여주지만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대출 문턱을 높였다. 여기에 합법적인 대출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마저 수익성 악화로 ‘고객 고르기’에 나서면 저신용자는 사채 등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

금융 당국이 추산하는 대출 난민은 31만6000명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고금리를 연 20%로 현재보다 4%포인트 낮출 경우 31만6000명이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3~4년에 걸쳐 민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12%(3만9000명)는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 예상보다 금리 인하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분석한 학자도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보고서 ‘포용적 서민 금융을 위한 대부금융시장의 제도 개선’에서 20% 금리 인하 때 약 57만명의 이용자가 대부업 시장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로 대출 공급보다 3조원의 초과 수요가 생긴다고 가정한 수치다.

최 교수는 “수익성 악화로 한계에 다다른 대부업계의 대출 중단이 속출하면 정부 예상보다 사채시장으로 몰리는 규모는 더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규 대출 중단하는 대부업체들

쪼그라드는 대부업 시장.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쪼그라드는 대부업 시장.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대부업 시장에는 이미 균열이 일고 있다. 대형업체들이 잇달아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제2금융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대부업체를 주로 이용했던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손 내밀 곳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수년간 자산 규모 업계 1위를 지켜온 산와머니는 2019년 3월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하고, 기존 대출만 회수하고 있다. 자산 규모 5위 수준인 조이크레디트대부는 지난해부터 신규 대출을 멈췄다. ‘러시앤캐시’로 유명한 대형 대부업 업체 아프로파이낸셜대부와 웰컴크레디라인대부는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2024년 대부업에서 철수한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5~6%에 이르는 조달금리를 비롯해 대손 비용과 중개수수료 등을 따지면 대부업체가 영업할 수 있는 한계선이 최고금리 24%”라며 “자칫 적자를 낼 수 있으니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는 업체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이용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 이용자는 138만9000명으로 전년(177만7000명)보다 38만8000명(-21.8%)이 감소했다. 대출 잔액(14조5363억원)도 같은 기간 8.7% 줄었다.

불법 사금융과 전쟁 선포한 정부  

정부도 최고금리 인하를 앞두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30일 금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등 관계기관은 불법 사금융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7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를 불법 사금융 특별 근절 기간으로 선포했다. 금리 인하로 불법 사금융으로 몰리는 소비자가 없도록 감시·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금융상품인 ‘안전망대출2’와 ‘햇살론15’도 내놓는다. 안전망대출은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17~19%로 대환해 주는 상품이다. 햇살론15는 기존 햇살론17(연 17.9%)의 금리를 2%포인트 낮춰서 새롭게 출시했다.

전문가들 “정부의 보완책 역부족, 대출 난민 지속”

하지만 정부의 보완책에도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대출 난민’ 사태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시장 금리까지 들썩이며 (대부업체는) 조달 금리 부담까지 커졌다”며 “앞으로 수익성 악화로 문 닫는 대부업체가 늘면서 저신용자는 불법사금융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이번 금리 인하로)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정부는 정책금융상품 규모나 지원을 적극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지현·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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