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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美 집값 최대 폭등…역대급 거품에 커지는 테이퍼링 압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1월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주택 앞에 주택 매물 광고가 붙어있다.[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주택 앞에 주택 매물 광고가 붙어있다.[AFP=연합뉴스]

미국 집값이 미쳤다. 지난 4월 주택가격이 15% 가까이 올랐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34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주식과 암호화폐, 원자재 시장으로 번져간 자산시장 과열이 주택 시장까지 옮겨붙는 기세다. 세계금융위기 직전 부동산 시장 과열 양상과 비슷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4월 주택가격 상승률 14.6% ‘역대 최고’

뜨겁게 달아오른 미국 주택 시장 상황은 수치로 드러난다. 29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대표 주택가격지표인 S&P 케이스-실러 4월 전국주택가격지수(249.04, 계절조정치)는 1년 전보다 14.59% 상승했다. 미국 전역의 집값이 1년 만에 평균 15% 가까이 올랐다는 뜻이다. 1987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애리조나주 피닉스가 22.3%로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샌디에이고(21.6%), 시애틀(20.2%), 보스턴(16.2%)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이날 공개한 4월 집값 상승률도 15.7%로 1991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였다. 지난 22일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집계한 5월 기존주택 매매 중위가격은 35만300달러(약 3억9647만 원)로 사상 처음 35만 달러를 넘었다.

34년만에 최대로 오른 미국 집값.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34년만에 최대로 오른 미국 집값.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시장은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의 집값 상승세는 2000년대 초반보다 더 빠르다”고 평가했다.

케이스-실러 지수를 고안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CNBC에 “100년간 어떤 자료를 봐도 집값이 지금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며 “세계금융위기 이전 주택가격이 정점이던 2003년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실러 교수는 “2005년부터 하락한 주택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즈음에 폭락했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시장 상황은 '역대급 집값'을 위한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 수급 불균형이다. 매물은 적은 데 수요는 줄어들 기세가 없다. 여기에 사실상 제로 금리인 기준금리(0~0.25%)와 사상 최저 수준인 주택담보대출(모지기) 금리 등이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상승속도 빨라

지난 3월 미국 미시시피주 메디슨카운티의 한 주택 건설현장에서 한 목수가 목재 구조물을 옮기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미시시피주 메디슨카운티의 한 주택 건설현장에서 한 목수가 목재 구조물을 옮기고 있다.[AP=연합뉴스]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공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도심지를 떠나 교외 주택으로 옮기려는 이들은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기가 얼어붙으며 신규 주택 건설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목재 등 주택 건설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공급 부족을 부추겼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월 주택공급(33만호)로 1년 전보다 5.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공급 증가는 늘어난 수요를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미 부동산정보업체 질로우의 매튜 스피크만 이코노미스트는 “일시적 숨 고르기를 기대해도 집값 상승을 누그러지게 할 어떤 요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낮은 금리에 부유층이 집값 끌어올려

지난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집에 주택 판매 문구가 붙어있다.[AP=연합뉴스]

지난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집에 주택 판매 문구가 붙어있다.[AP=연합뉴스]

시장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에 투기 수요까지 부동산 시장 과열에 기름을 붓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매달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담보증권(MBS) 매입에 나서며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프레디맥에 따르면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지난 23일 기준 3.02%다. 통계가 집계된 1973년 이후 가장 낮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낮은 이율과 저렴한 모기지 등으로 인해 현금 동원력이 있는 미국 부유층이 주택 경매 전쟁에 뛰어들며 집값을 끌어올렸다”며 "예산이 적은 신규 주택 구매자가 집주인이 되기는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역대 최저치 미국 주택 담보대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역대 최저치 미국 주택 담보대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MBS 매입 축소 만지작, 테이퍼링 압박받는 Fed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왼쪽)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연합뉴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왼쪽)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연합뉴스]

치솟는 집값으로 Fed와 바이든 행정부도 골치가 아프다. Fed는 집값 급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로금리에 MBS 등 양적완화(QE) 정책으로 자산과열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때문에 Fed 내에서도 MBS 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2단계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MBS 매수가 치솟는 집값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며 MBS에 매입에 따른 저금리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도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주택 가격 거품에 이은 붕괴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며 MBS 매입 축소를 주장했다.

양극화 해결에 고심 중인 바이든

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거리에서 사회 운동가가 "거주는 인권"이란 구호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거리에서 사회 운동가가 "거주는 인권"이란 구호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간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는 상황에서 주택 가격 급등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하고, 서민층 주거안정이 위협받으면 경제 회복이 지체될 수 있어서다. 백악관이 공공 모기지 보증기관의 저당물 압류 유예시한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하지만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있다.

WP는 “장기적 해법을 가동하지 않으면 대공황 때처럼 주택 소유율이 급락하는 회복 불능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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