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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살기 바쁜데 무슨 봉사냐고요? 웃으면 그게 봉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5) 

비가 오려나 보다. 건조를 위해 마당에 펼쳐 두었던 각종 농작물을 서둘러 창고 겸 공방으로 거둬들인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어느 집의 소출인지도 모를 다양한 작물들이다. 양파, 마늘, 비트, 옥수수…. 웬 가짓수가 이리도 많은지. 이게 다 한 집에서 왔다면 그 집은 아마도 어마어마한 부농일 게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이렇게 많은 종류의 작물을 지을 부농이 없다. 다 고만고만하다. 그렇다면 여러 집에서 가져온 농산물일 텐데,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우쭐해지기까지 하다. 동네 인기스타가 됐나 보다. 제주로 이사 온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2년 만에 동네 스타가(?) 됐으니 인기몰이가 꽤 고속질주한 셈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제주 정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이장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부부, 우리 동네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인사 잘하는 사람이랍니다.” 그것이 인기몰이의 시작이었다. 아니, 세상에 외지인들이 얼마나 이웃과 교류도 안 하고 인사도 나누지 않았으면 그냥 건넨 미소가 별명으로 돌아올까? 그렇게 시작한 인기몰이는 내가 먼저 베푸는 행위로 인해 더욱 가열차졌고, 반대급부도 점점 많아지게 됐다.

마당 가득 펼쳐놓은 이웃이 준 농작물. 제주 정착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사진 한익종]

마당 가득 펼쳐놓은 이웃이 준 농작물. 제주 정착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사진 한익종]

육지인들은 제주를 향해 굉장히 보수적이고 괸당문화로 인해 자신 외에는 모두 거부하는 습성이 있다고 힐난한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런 지역 배타성이 제주에만 있고, 또 자신이 먼저 손 내밀고 베풀었는데 지역 주민이 그렇게 대했는지 말이다.

10년 전 화천에 내 손으로 집을 짓고 그 사례를 어느 기업의 은퇴 예정자에게 강의한 적이 있었다. 강의 말미에 항상 권한 내용은 인생 후반부 자신의 손으로 집 한번 지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살 집(삶), 내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갈 집(추억)을 왜 남의 손에 의지하고 남과 비교하며 허황된 생활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라는 것과 자기 손으로 조금씩 집을 지으면서 이웃 주민과 차곡차곡 교류를 넓혀가고 인연을 쌓아 감으로써 향후 정착에 도움을 받으라는 점에서였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웃는 얼굴이란 표정뿐만 아니라 먼저 베풂과 봉사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래전 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을 때 들은 얘기다. 최고 지휘관을 동행해 짚차로 이동 중 백 미러를 힐끔 보며 지휘관이 운전병에게 한 얘기.

“김 하사, 한 중위 좀 봐라. 저 사람 웃지 않으면 감히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매서운 눈매를 가졌다. 그런데 항상 웃는 표정이니 정감이 가지 않나. 너도 좀 웃어라. 무서워서 네 차 타겠냐?”

미소는 단지 좋은 표정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이로 하여금 마음의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묘약이다. 그런 면에선 웃음도 훌륭한 봉사다. 세상에 이렇게 효과 만점인 봉사가 있을까. 먼저 미소를 보내면 그 미소가 상대편의 마음을 녹이고 서로 간에 훈훈한 정을 나누게 하니 이보다 좋은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먼저 웃고, 베풀고, 봉사하면 그 누구도 내 반대편에 서지 않는다. 우리는 봉사나 기여하면 굉장히 특이하고 힘든 일이며 자기희생이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봉사는 작은 웃음, 최소한의 배려, 소소한 나눔 등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행위이다.

봉사가 힘들고 어렵다고, 내 살기도 바쁜데 무슨 봉사냐고 항변할 생각이라면 웃기부터 하라. 웃음은 이웃에 대한 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임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사랑을 키우게 하는 자양분이다. 마더 테레사는 봉사에 대해 “사랑은 그 자체로 머무를 수 없다. 사랑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데 그 행동이 바로 봉사”라고 말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 그것이 봉사의 본질이다.

물질 마치고 나와 성게 다듬는 해녀. 해녀들은 누구나가 내게 수확물을 건넨다. 이웃으로 받아들였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물질 마치고 나와 성게 다듬는 해녀. 해녀들은 누구나가 내게 수확물을 건넨다. 이웃으로 받아들였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움트고 이웃에 대한 사랑은 봉사와 기여라는 형태로 완성된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봉사는 공짜가 아니다. 봉사는 유무형의 보답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봉사는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내가 강조하는 것이다.

어제 물질 마치고 나와 성게를 다듬던 해녀들이 “이거 까먹고 가”라며 성게알을 권한다. “삼춘 그 어렵게 잡은 성게를 왜 거저 줘요? 먹은 거로 할 테니 감사합니다”라고 자리를 떴다. 이웃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와, 해녀들이 선생님 엄청 좋아하나 보네요. 그 비싼 걸 먹으라고 하는 걸 보니.”

그러게 내가 평소에 잘하긴 했나 보다. 기껏해야 만나면 먼저 웃음으로 인사 건네고, 비치코밍, 해녀 그림 스케치 삼아 나선 길에 물질 마치고 나오는 해녀에게 가끔 노력 봉사한 것 외에는 없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한 리듬을 탄다.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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