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건달 조직 닮은 '배신' 타령 접으시죠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08:44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직후의 모습. 이날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을 '우리 총장님'이라고 불렀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직후의 모습. 이날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을 '우리 총장님'이라고 불렀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한 여당의 '배신 프레임' 씌우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회창씨 같은 경우 김영삼 정부에 의해서 감사원장, 국무총리로 발탁됐지만 YS를 배신하고 나와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다 결국 실패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6월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 뒤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배신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6월 24일,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향해.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인가?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고 누군가 배신의 길을 열면 우르르 따라쟁이가 줄을 선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6월 28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사직하자.

요즘 부쩍 ‘배신’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립니다. 여당 의원들은 자기네 편이었다가 이탈한 사람에겐 여지없이 배신자 프레임을 들이댑니다. 지난해엔 금태섭 전 의원에게 그랬습니다. 마치 어둠의 세계에 있는 형님들 모임 같습니다.

“니는 약은 우리한테서 받아먹고 충성은 엉뚱한 데 가서 맹세했다매?” -영화 ‘친구’에서 상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식구는 챙기고, 배신하는 XX들 다 죽였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도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버렸어.(임춘애입니다. 형님) 내가 현정화라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내 말에 토, 토, 토, 토 다는 XX는 전부 다 배반형이야, 배신, 배반형!” -영화 '넘버3'에서 불사파 두목 조필.

배신은 관점에 따라 누가 한 것인지가 달라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주문했습니다. 그 뜻에 충실히 따랐는데 '식물 총장'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 역할을 맡은 이병헌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며  “각하를 혁명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라고 말합니다.

“If someone betrays you once, it’s their faults; if they betray you twice, it’s your fault.” 배신을 자꾸 당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입니다. 작가이자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엘리너 루스벨스가 남긴 말입니다.

그리고요,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을 배신자가 아니라 ‘갑질’ 피해자로 보는 국민이 많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에 만든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ㆍ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사용자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학대에 해당합니다. 배신 타령, 자기 얼굴에 침 뱉기입니다. 총장ㆍ원장 시켜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요? 그게 딱 "내가 너 데려다 키웠다"는 건달 마인드입니다.

어제 윤 전 총장이 대선 도전 선언을 하자 여당에서는 ‘쿠데타’ ‘윤면수심’ ‘자기 부정’ 등의 거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정치권 반응을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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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정치검사 등장 참담” 야당 “직설적 화법 인상적”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선언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 이날 출정식에는 국민의힘 의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선언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 이날 출정식에는 국민의힘 의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29일 대선 출마 선언에 여야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연성 쿠데타”(이광재 의원), “극우적 역사인식의 소유자”(우원식 의원)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반면에 국민의힘에선 “국민들과 뜻이 일치하는 선언” “하루빨리 입당하라” 등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평생 검사로 지낸 윤 전 총장의 한계와 전직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로 인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지적하는 주장을 쏟아냈다. 대선주자들이 앞장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윤 전 총장 대선 출마선언에 대해 “국정 비전이 뭔지 드러나지 않은 선언이었다. 준비 부족을 드러낸 게 아니길 바란다”고 혹평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더 거칠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 공직자로 검찰총장을 했는데 사표 내고 정부 비판만 하는 건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이광재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연성 쿠데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입장문을 내고 “‘윤면수심’ 윤 전 총장이 결국 검찰독재 시대의 단꿈을 버리지 못했다. 정치군인도 모자라 정치검사가 등장하는 참담한 순간”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윤 전 총장의 ‘검사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송영길 대표는 “대통령은 미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평생 검사만 한 분이 바로 대통령 되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국민들께서 특수부 검사로 평생을 보낸 분을 대선주자로서 이렇게 지지하겠느냐.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친문 그룹 의원들은 “윤 전 총장의 미래는 황교안”(강병원 최고위원), “한 시간의 동문서답 횡설수설”(박주민 의원), “태극기부대, 극우 인사의 영혼 없는 대독”(정청래 의원) 등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반응은 180도 달랐다. 이준석 대표는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 직후 페이스북에 “훌륭한 연설”이라고 썼다.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가 담겨 있고 애매모호한 화법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화법이 인상적”이라고 호평했다.

“속히 국민의힘에 입당해 시너지를 내자”는 주장도 나왔다. 권성동 의원은 통화에서 “국민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짚어서 임팩트 있게 잘했다”며 “중도 외연 확장을 한 뒤 우리 당에 입당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도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 공정과 상식, 인권과 법치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 연대와 책임 등 공화적 가치도 주목했다”며 “바로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입당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내자”고 촉구했다.

다만 국민의힘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의 메시지가 “너무 밋밋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로켓에 비유하면 대기권 저항을 뚫고 뛰어오르는 2차 추진력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밋밋했다. 질의응답 때 버벅거리는 모습에서 정치근육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고 평가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말투나 내용에서 확신과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고 말했다.

한영익·성지원·남수현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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