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남편과 딴방 쓰는 지인에게 합방 속마음 떠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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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 (198)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한 지인 부부는 작은 이층집에 산다. 자식들이 다 출가하며 떠난 이층을 세놓지 않고 부부가 사용하고 있다. 일층은 남편이 살고 이층은 부인이 산다. 밥은 같이 먹지만 그 외의 행동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취미생활로 꾸며놓고 사는데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애완견을 기르고, 언니는 꽃과 작은 물고기와 더불어 차를 직접 덖고 만든다. 손님이 오면 어느 찻집 부럽지 않을 예쁜 방에서 잎차를 대접하는 낙으로 노후를 보낸다.

남편은 가끔 부인 손님이 일층 문을 두드리면 입구가 다른 이층으로 안내한다. 그 모습도 너무 멋있다. 교육자로 은퇴해 노후가 여유롭지만 호스피스 봉사활동과 온갖 봉사에 열정을 다하신다. 우아한 차를 대접하고 싶은 욕심과 10년이 넘은 강아지, 또 그만큼의 세월을 함께 한 다육이와 물고기 기르기 외엔 정말 욕심이 없다. 자식들이 오르내리기 피곤하니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권하지만 상관 안 한다. 며칠 전에도 내가 방문해 저녁을 함께 먹는데 서로 염려해주는 두 분의 표정에 사랑이 가득하다. 밥 먹고 각자 방으로 헤어지는 게 좀 멋쩍었지만. 지하까지 3층이니 계단을 운동 삼아 오르내려서 그런가 80대를 바라보는 그들은 나보다 더 젊다.

나이 든 어른은 밤이 되면 외로움이 배가 된다고 한다.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잠은 같이 자야겠단 생각이다. [사진 pixabay]

나이 든 어른은 밤이 되면 외로움이 배가 된다고 한다.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잠은 같이 자야겠단 생각이다. [사진 pixabay]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왜 남성의 로망이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동굴이 있어야 오래 잘산다. 서로를 향한 잔소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요즘은 각방에서 살고 자는 부부가 많아졌다. 그런데 나이 든 어른은 밤이 되면 외로움이 배가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잠은 같이 자야겠단 생각이다.

내가 결혼해 시집살이를 할 때 손자 사랑이 지극하신 시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늘 끼고 살던 손자를 젊은 여자에게 건네주려니 마음이 안쓰러웠는지 저녁이면 방바닥이 따뜻한가, 추운가, 더운가 하며 날마다 신혼 방에 들어왔다. 나는 이불을 따로 깔고 할머니와 남편이 함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도록 하는 게 예의 같아 그렇게 했다. 시집살이란 게 얼마나 피곤한가. 시어른 눈치 보며 없는 살림에 열 식구 삼시세끼 챙기는 게 버거운 일이라 새댁이고 뭣이고 누우면 먼저 코를 골았다. 그러다 보니 신혼의 불타는 밤은 저녁이 아니라 할머니가 당신 방으로 가시고 난 후에 찾아오곤 했다. 어른이 아침까지 함께한 날이면 남편의 입이 당나발처럼 나와 있었다. 생각하면 웃음 나는 신혼일기다.

처음부터 그렇게 우리는 평생 팔베개 한번 없이 이불로 만든 각자의 구역에서 소원하게 살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는 옆자리에 아이를 끌어안고 잤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그래도 행복했다. 시간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중년이 되었다. ‘아내가 여행을 떠났는데 표정이 너무 밝아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하루 종일 슬픈 소설을 읽었다’는 한 작가의 문장은 삶에 지쳐 피곤한 우리를 말하는 듯 했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눈치껏 어슬렁거리며 서로의 역할을 했다. 남편과 시골로 내려가 둘만 살면서 우리는 비로소 신혼 흉내를 잠시 냈지만 애증으로 겹겹이 쌓인 감정은 몸과 마음이 서로 투덕거리느라 사랑을 만나도 힘에 부쳤다.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 천생연분 찰떡부부는 찰떡이 아닌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사진 pixabay]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 천생연분 찰떡부부는 찰떡이 아닌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사진 pixabay]

어느 날 이웃이 놀러 와 부부관계를 하소연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리 오래 산 부부라도 같이 자다가 불편하니 따로 자자고 말을 꺼내기도 어렵고, 따로 자다가 너무 외로우니 이제부턴 같이 자자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사이가 부부더라’ 어느 책의 구절로 속엣말을 하던 기억이 난다.

방문한 지인 언니랑 수다 떨다가 이런저런 부부생활 이야기 중에 “잠잘 때는 같이 자고 싶은가”라고 속마음을 물어보라 하니” 아이고~그리 물었다가 같이 자고 싶다고 답하면 어쩌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저이가 나를 소 닭 보듯 해도 아플 땐 껌딱지처럼 붙어 밤새 간호해 주더라”던 남편분의 미소가 생각난다. 그나마 두 분 다 건강하시니 아직은 적군 놀이도 괜찮다.

출근길 라디오를 트니 재밌는 퀴즈가 나온다. ‘다음 중 가족이 아닌 조합은 몇 번일까요, ①고모와 아빠 ②동생과 할머니 ③엄마와 아빠’. 답은 3번이란다. 누군가를 끼지 않고는 남남처럼 불편한 이름, 부부다. 오래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 천생연분 찰떡부부는 찰떡이 아닌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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