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공짜 빵 1년 줬다…월세 살아도 행복한 '빵식이 아재'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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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남 남해 '행복 베이커리'의 김쌍식 대표. 1년 넘게 등굣길 아이들에게 공짜 빵을 나눠주는 주인공이다. 손민호 기자

경남 남해 '행복 베이커리'의 김쌍식 대표. 1년 넘게 등굣길 아이들에게 공짜 빵을 나눠주는 주인공이다. 손민호 기자

경남 남해군 남해경찰서 오른쪽 골목 모퉁이에 낡은 4층 건물이 있다. 건물을 끼고 좁은 골목이 이어지는데, 골목에서 나오면 지역 명문 남해초등학교가 보인다. 골목에서 학교까지 길어야 1∼2분 거리. 제빵사 김쌍식(47)씨의 ‘행복 베이커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골목 어귀 모퉁이 건물 1층.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공짜 빵을 내놓는 빵집이다.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씨 나눔 1년
“배고픔 내가 잘 알아, 계속 줄 것”

“아침 7시 40분이면 빵을 내놓습니다. 70개에서 100개 정도. 주로 카스텔라, 곰보빵, 크림빵입니다. 아침마다 빵을 구우니까,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조금 더 많이 구우면 됩니다. 아침 9시면 거의 다 없어져요. 두 개씩 가져가는 애들은 거의 없고, 주변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많이 가져갑니다.”

빵집은 작다. 11평(약 36㎡)이 조금 넘어 가게에 두 명만 들어가도 좁게 느껴진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빵집 앞에 작은 선반이 나와 있고, 선반에 붙인 종이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아침밥 굶지 말고!! 하나씩 먹고 학교 가자 배고프면 공부도 놀이도 힘들지용~~!’

29일 아침 김쌍식씨가 아이들에게 내놓은 빵. 사진 김쌍식

29일 아침 김쌍식씨가 아이들에게 내놓은 빵. 사진 김쌍식

김씨가 등굣길 아이들에게 공짜 빵을 준 건 지난해 6월부터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빵을 주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읍내 마트 안에서 빵집을 했었는데, 마트는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었다. 9시면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이다. 이윽고 2019년 10월 이 자리에 빵집을 열었고, 코로나 사태로 주저하다 지난해 6월부터 빵을 내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빵을 내놨어요. 코로나 사태로 학교 대부분이 문 닫았던 1주일 정도 빼고. 요 며칠도 남해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와 조심하고 있어요. 전날 장사하다 남은 빵 주는 거 아닙니다. 애들 먹이는 건데, 탈 나면 안 되잖아요.”

김씨는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내내 아팠고, 어머니가 삼천포 쥐포 공장에서 온종일 일했다. 여덟 살 터울 누나부터 막내 김씨까지 6남매가 학교가 파하면 쥐포 공장으로 나가 어머니를 도왔다. 늘 배가 고팠다. 밥 못 먹고 학교 가는 날이 밥 먹고 가는 날보다 많았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빵을 배웠다. 아마도 그때였을 게다. 빵 가게를 열면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겠다고 작정했던 게.

“아이들 보면서 저도 행복을 느껴요.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이 있어요. 늘 엄마랑 같이 오는데, 언젠가 빵 갖고 가라고 했더니 제 손에 있던 ‘쫀드기’를 찢어서 주더라고요. 순간 울컥했어요. 아침마다 빵을 챙겨 가는 여중생도 있어요. 홀아버지 모시고 사는 아인데, 아버지 아침 해드리고 막상 자기는 밥을 못 먹고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평범한 아이들이 더 많지요. 빵 하나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건 똑같아요.”

남해의 빵식이 아재 김쌍식씨의 '행복 베이커리'. 손민호 기자

남해의 빵식이 아재 김쌍식씨의 '행복 베이커리'. 손민호 기자

남해 지인들 사이에서 김씨는 ‘빵식이 아재’로 통한다. 등굣길 공짜 빵도 모자라 남해의 각종 장애인 기관과 자활센터에서도 매주 빵 나눔 행사를 하고 있어서다. 김씨가 빵으로 봉사하는 단체는 모두 12개. 여기저기에 나눠주는 빵이 1년에 2000만 원어치가 넘는단다. 참, 김씨는 ‘빵식이 아재’라 불리는 걸 내키지 않는다. 미혼이어서다. “빵식이 총각은 어떠냐” 물었더니 웃기만 했다.

“혼자 사니까 월세 말고는 큰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여건이 달라져도 아이들에게 빵은 계속 주려고 합니다. 잘 먹어야 잘 놀고 잘 크잖아요.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그러지 못했으니까.”

남해=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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