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언의 시시각각

아이젠하워를 꿈꾸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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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레드카펫을 지나듯 사뿐히 걸음을 내디뎌 권좌에 앉을 수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마다하겠는가. 시민이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런 일은 지극히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우아한 무혈입성을 꿈꾼 많은 사람이 마주한 비극이었다. 근래 주요국의 역사에서 한 사람이 그 꿈같은 성공을 이룬 사례로 거론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80∼1969)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국민 영웅도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에 최선
꽃가마 타고 가는 대선 가도 없어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선 다섯 달 전인 1952년 6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나토(NATO)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거를 딱 다섯 달 치렀다는 뜻이다. 공화당 당내 후보 경선은 그해 1월에 시작됐는데 아이젠하워는 ‘부재중’이었다. 사실 그는 출마 선언도 하지 않고 후보가 됐다. 공화당 의원들이 본인의 의사가 확인됐다며 경선 후보군에 넣었다. 공화당 대선주자로 확정된 것은 7월이었다.

그는 그 대선에서 민주당의 러브콜도 받았다. 원하기만 했다면 민주당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1948년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돼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인기 추락을 겪던 트루먼 대통령은 52년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민주당은 아이젠하워를 원했다. 그때까지 드러난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그는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에 가까웠다. 훗날 아이젠하워는 “민주당의 타락과 타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51년 봄 미국에서 ‘아이젠하워를 징발하자(Draft Eisenhower)’는 운동이 벌어졌다. 48년에도 잠시 전개됐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아이 라이크 아이크!(I like Ike!)”를 외쳤다. 아이크는 그의 애칭이다. 지지자들은 초당적이었다. 52년 2월 8일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2만5000명이 운집해 아이젠하워의 출마를 촉구했다.

아이젠하워는 11월 선거에서 선거인단 442명 확보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상대 후보였던 민주당의 아들라이 스티븐슨 후보는 선거인단 89명을 얻었다. 당시의 48개 주 중에서 9개 주에서만 스티븐슨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으로서 순탄하게 백악관의 주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양당 체제는 그런 선거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체 득표수 면에서는 55.2%대 44.3%였다. 진영을 초월한 전폭적 지지는 없었다. 상당히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졌다. 일리노이주 주지사였던 스티븐슨은 뛰어난 연설 능력을 발휘하며 아이젠하워를 추격했다.

미국 학술지 ‘프레지덴셜 스터디 쿼털리’ 1990년 봄호에 실린 논문(저자 스티븐 우드)에 따르면 아이젠하워 대선 캠프가 세운 미디어 전략이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중 핵심이 당시에는 새로운 매체인 TV를 통해 홍보하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가 미국에 답한다’는 제목의 광고가 TV의 주요 시간대에 계속 나왔다. TV 광고 선거운동의 효시였다. 요즘으로 치면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운동이다. 테드 베이츠라는 상업 광고의 귀재가 이를 지휘했다.

미국 역사학자 체스터 파흐는 아이젠하워가 한국전쟁ㆍ부패ㆍ공산주의라는 세 가지 이슈에만 집중한 게 현명한 전략이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선거운동 기간에 스티븐슨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트루먼 대통령만 공격했다. 그의 주변에는 선거 전략에 뛰어난 공화당 의원들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국민 후보’가 돼 꽃가마 타고 우아하게 지도자의 자리에 등극하기를 바랐던 이들이 있었다. 아이젠하워 승리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따라 하려 했다. 그리고 모두 실패했다. 지금도 한국의 아이젠하워를 꿈꾸는 주자들이 있다. 선거는 현실이다.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온 아이젠하워도 전투에 임하듯 전략적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 전장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참모를 믿고 따랐다. 어쩌면 이것이 아이젠하워 승리의 진짜 가르침이다.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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