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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별법, 왜 미적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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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정부의 반도체 특별법 입법 속도가 확 꺾였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K-반도체 전략 발표 때와 온도 차가 확연하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5월 13일 K-반도체 전략을 내놨다.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세액공제, 규제 합리화, 용수 및 전력 지원, 인력 양성, 생태계 활성화, 차세대 기술 개발 지원이 골자다. 이 중 정부의 예산 지원은 5년에 걸친 차세대 반도체 개발비 5000억원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반도체 특별법을 입법해야 가능하다. 민주당도 그래서 반도체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도체 특위는 현재 난관에 부닥쳐 있다. 우선 정부가 반도체 특별법을 통해 R&D·시설투자 세액공제를 해주면 결국 삼성과 SK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여당 내 반발이다. 여기에는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재정 당국도 가세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각각 36조원과 5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런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게 온당하냐는 반발에 특위는 발목이 잡혀 있다. 그래서 반도체업계는 두 기업에 세액 공제액만큼 반도체 인력 양성과 생태계 구축 투자를 유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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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반도체만 특정해 지원할 경우 향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되는 등 무역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WTO 보조금 협정에서 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액공제를 보조금으로 규정하기에 나올 수 있는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기우다. 반도체 특위도 반도체뿐 아니라 미래 차, 6G(세대) 통신, 바이오·헬스 등 미래 신사업 전반으로 지원을 확대하면 무역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을 반면교사 삼을 만하다. 미 의회는 이미 반도체에 5년간 59조원을 직접 지원하는 법(CHIPS for America Act)을 처리했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같은 미 기업뿐 아니라 삼성전자, 대만 TSMC까지 지원한다. 이후 미 상원은 WTO 제소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에 향후 5년간 약 280조원을 지원하는 미국 혁신경쟁법안(USICA)을 입법했다. 미래 핵심기술에서 중국을 따돌리고 미국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반도체에 대한 지원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과 일자리에 대한 투자다. 미국도 대만도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역시 아베 신조 전 총리 주도의 의원연맹이 반도체 지원 법안 마련에 여념이 없다. 정부나 국회는 대기업 특혜라는 옹졸한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의 먹거리를 지킨다는 책임감으로 반도체 특별법의 입법 속도를 높여야 한다.

장정훈 산업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