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지사지(歷知思志)

정조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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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정조는 평생 인삼을 꺼렸다. 생사를 넘나들던 1800년 6월 인삼을 쓴 경옥고(瓊玉膏)를 권유받았을 때도 “경들은 나의 본디 체질을 몰라서 그렇다. 나는 본디 온제(溫劑)를 복용하지 못하는데 음산하고 궂은 날에는 더욱 먹지 못하니 그 해로움이 틀림없이 일어난다”며 손사래 쳤다. 기력을 회복하려면 부득이하다는 어의 등의 권유에 결국 경옥고를 귤강차에 타서 복용했는데, 상태가 악화해 이틀 뒤 사망했다.

정조는 『수민묘전(壽民妙詮)』이라는 한의서를 직접 편찬했을 정도로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가 인삼을 꺼린 것은 열이 많은 자신의 체질에는 인삼이 ‘독’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조는 생전에 “울화가 팽배해 있는 결과로서 나의 학문의 힘이 깊지 못해 의지의 힘이 혈기를 제어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화증을 치료하는 고암심신환을 20세 후반부터 10여년 복용했다.

역지사지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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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원한 제국』 등이 인기를 얻으며 한때 ‘정조 독살설’이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요즘 학계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보다는 울화로 건강이 악화했고 면역력도 떨어뜨렸을 것으로 본다. 『왕의 한의학』을 쓴 한의사 이상곤 씨도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됐고, 마음속 불길에 평생 갉아 먹히며 살았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수의 칼춤이 펼쳐지는 ‘드라마’를 수십 년째 보고 있다. 민생보다 화끈한 복수혈전에 더 집착하는 듯한 모습은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면역력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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