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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감성 유튜브’ 대박…젊은층에 소멸 위기 문경 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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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북 문경시 소통담당 공무원 정민찬씨가 푸른색 도포와 갓을 갖춰 입은 채 문경새재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4일 경북 문경시 소통담당 공무원 정민찬씨가 푸른색 도포와 갓을 갖춰 입은 채 문경새재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4일 경북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 푸른색 도포를 입고 갓까지 갖춰 쓴 한 남자가 선비의 상 앞에서 옷차림을 정돈하고 있었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청년 선비’는 문경새재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장면들을 촬영했다.

‘문경시청TV’ 공무원이 제작·연기 #충주·여주와 함께 ‘3대장’으로 인기 #“지자체 제작 영상도 재미 줄 수 있어 #즐거운 곳이란 이미지 심어주고 파”

영상에서 ‘청년 선비’로 활약한 주인공은 문경시청 소통담당 공무원인 정민찬(33)씨다. 전문 배우나 유튜버가 아니지만 그는 매달 두 차례씩 문경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문경시청TV’에 올릴 영상을 찍고 있다.

정씨는 “이날 촬영한 영상은 ‘문경새재 과거급제 체험 :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제가 직접 암행어사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제작하는 유튜브 영상 콘텐트들은 올릴 때마다 평균 수천건의 조회수를 자랑한다. ‘관짝소년단’을 연기한 영상은 1만3000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지자체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들이 조회수 100회를 쉽게 넘기지 못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문경시청TV에 올라온 영상 중 TV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패러디해 지역 홍보를 하고 있는 장면. [문경시청TV 유튜브 캡처]

문경시청TV에 올라온 영상 중 TV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패러디해 지역 홍보를 하고 있는 장면. [문경시청TV 유튜브 캡처]

문경시청TV는 젊은층들 사이에서 이른바 ‘병맛 3대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여기서 ‘병맛’은 ‘맥락이 없고 어이가 없지만 재미있는 것’을 뜻하는 인터넷 유행어다. 문경시청TV와 충북 충주시 ‘충TV’, 경기 여주시 ‘여주시청’ 등이 그 3대장이다. 이 중 충TV는 ‘공무원 관짝춤’이라는 영상으로 조회수 625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경시청TV는 3개 채널 중 가장 늦게 시작한 막내다.

이들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영상 속에 가득한 ‘밈(meme)’ 때문이다. 밈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펴낸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등장한 말로, 최근 온라인에서는 특정 콘텐트를 다양하게 재가공하고 변형해 다수와 함께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가수 비의 노래 ‘깡’이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되거나, 과거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한 출연자가 외친 “무야호”라는 감탄사를 최근에 다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현상들이 밈에 해당한다.

문경시청TV 영상에는 밈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유튜브 영상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게임 광고를 패러디하거나 영국의 서바이벌 전문가 베어 그릴스를 따라하는 등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웃음을 자아낸다. 뭔가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B급 감성’이다.

정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탐독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밈들을 재밌어하는지 자주 살펴보고, 유튜브나 SNS에서도 어떤 것들이 회자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시청TV 유튜브 채널의 인기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들이 문경시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는 분석이다. 문경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위험지수에서 지난해 전국 시(市) 단위 지역 중 3위를 기록했다. 경북 상주시가 0.24로 가장 낮았고 전북 김제시가 0.25, 문경시 0.26 순이다.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0.5 이하면 30년 뒤 지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정씨는 “많은 이들이 공공기관에서 만든 영상을 재미없고 딱딱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며 “문경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이 영상들을 통해 사람들이 문경은 재밌고 즐거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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