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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논쟁 뛰어든 추다르크…젠더 깃발 들었던 이준석 닮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독선적이고 혐오적으로 오해받는 ‘페미(니즘) 현상’에 저는 반대한다. 일각의 우려스러운 ‘배타적(exclusive) 페미 현상’은, 함께 연대하여 성 평등을 실현할 사람들조차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9일 ‘페미니즘 현상’에 대한 장문(1633자)의 작심 비판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미니즘은 출발부터 기본적으로 ‘포용적(inclusive)인 가치와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남성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저는 여기에 찬동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29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29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추다르크’의 작심 비판 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란 별명을 가진 추 전 장관이 페미vs반(反) 페미 논란의 한 복판에 뛰어들었을까. 추 전 장관 앞엔 늘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최초의 여성 선출직 여당 대표’ 등의 수식어가 따라왔다. 판사 시절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에 선정(2000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됐고 민주당 대표 땐 “여성이 역사 속 깨달음과 포용 가치에 앞장서 왔다”(2017년 1월)고 강조하곤 했다.

2017년 1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가 개최한 여성단체 대표자 초청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추미애 당시 대표(앞줄에서 왼쪽 다섯번째). 뉴시스

2017년 1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가 개최한 여성단체 대표자 초청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추미애 당시 대표(앞줄에서 왼쪽 다섯번째). 뉴시스

그런 추 전 장관이 이날 선명한 대응에 나선 건 최근 그를 ‘반(反) 페미’로 모는 비판에 대한 반박 차원이었다. 논란의 시작은 공식 대선 출마 선언(23일) 뒤 향후 행보를 밝히기 위해 ‘시사타파TV’와 인터뷰 때(26일) 한 말이었다. ‘시사타파TV’는 친(親)조국 성향의 유튜브 방송이다.

‘추 전 장관이 생각하는 여성주의가 뭔가’라는 질문을 받은 추 전 장관은 본인의 판사 시절을 언급하며 “내가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걸 (요구) 안 하고 개척해 나가야지만 여성도 남자와 똑같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엔 “엄마만 헌신적인 게 아니다. 아버지도 엄마 없는 가정에서 헌신적”이라면서 “저는 페미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라고도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왼쪽)이 26일 시사타파TV '특별편성 - ″추미애의 깃발″'에 출연한 모습. 오른쪽은 방송인 노정렬씨. 유튜브 캡처

추미애 전 법무장관(왼쪽)이 26일 시사타파TV '특별편성 - ″추미애의 깃발″'에 출연한 모습. 오른쪽은 방송인 노정렬씨. 유튜브 캡처

비판은 진보 진영 내부에 시작됐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28일 “페미니즘은 여성을 꽃처럼 대접하라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을 사람으로 대접하라는 사상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독한 곡해”(페이스북)라고 했고, 같은 날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20년 전 인터뷰 기사인 줄 알았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트위터)라고 썼다. 추 전 장관이 이날 글에 “제 말의 맥락도 무시한 채 저를 반 페미니스트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라는 서두를 단 것도 그래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8일 올린 트위터 게시글. 트위터 캡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8일 올린 트위터 게시글. 트위터 캡처

이준석 마케팅?…효과 두곤 “전략적” vs “편 가르기 정치”

추 전 장관의 적극 반박은 또 다른 해석을 낳았다. ‘이준석 마케팅’ 아니냐는 시각이다. “검찰개혁 강경파 외엔 지지층이 크게 없는 추 전 장관이, 외연 확대를 위해 젠더 이슈를 건드린 것 같다”(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것이다.

“나는 기회와 공정을 원했지 특혜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26일), “20대의 공정성을 살리려면 (남녀를 똑같이 대해달라는 20대의 요구를) 정서적으로 이해해주는 게 더 먼저 필요하다”(29일) 등의 추 전 장관의 발언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능력주의’ 프레임과 닮았다는 해석이다. 이 대표는 각종 인터뷰에서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조작 및 날조에 기반한 젠더 갈등 유발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논쟁 중 추 전 장관은 표현을 “‘페미’라는 것에 반대한다”(26일)에서 “‘페미 현상’에 반대한다”(29일)로 미묘하게 조정했지만 기조를 유지했다.

추 전 장관이 페미니즘 논쟁에 뛰어든 것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전망은 분분하다. 신 교수는 “미국의 비키 랜달 교수 등은 다수 학자가 여성 후보가 여성 인권을 논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성과를 내 왔다”며 “추 전 장관도 이 점을 고려해 포석을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 페미니즘 논쟁을 이용한 것 같진 않다”면서도 “굳이 다양한 함의를 가진 문제를 무 자르듯 건드린 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계에선 아쉬움이 나왔다. 허민숙 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각종 ‘여성 최초’ 기록을 써오신 분이, 페미니즘에 혐오를 씌우는 말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특정한 집단이 환호한다고 해서, 편 가르기를 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정치는 지금 당장의 달콤함이 아닌, 장기적 안목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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