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도 "희한"…인사동서 쏟아진 '한글 금속활자'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15:46

업데이트 2021.06.29 18:27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뉴스1]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뉴스1]

서울 인사동 땅 속에서 조선 전기 때로 추정되는 금속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특히 1600여점이 출토된 금속활자는 한자(1000여 점)와 한글(600여 점)을 아우르고 이제껏 인쇄본으로만 전해지던 초창기 훈민정음 음운을 활자 실물로 드러냈다.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조선 전기 활자‧인쇄 문화 연구를 급진전시킬 역대급 유물로 평가된다. “서지학 전공자 입장에선 애타게 기다리던 유물”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2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발굴 성과 관련 언론공개회 내용을 Q&A 형태로 정리했다.

[Q&A]

어떤 금속활자가 나왔나. 왜 중요한가.

“크게 두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지금까지 전해진 활자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가 다수 나왔다. 그간 가장 오래됐던 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 소장 30여자인데, 세조 즉위년(1455년)에 주조한 ‘을해자’다. 이번에 나온 한글활자는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훈민정음 창제 당시 동국정운식 한자표기도 포함하고 있다. 같은 을해자라도 더 오래된 활자일 가능성이 크다. 크기상으로도 중박 소장본은 소자(小字) 뿐인데 이번엔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 특소자까지 모두 나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방식이 이처럼 활자 실물로 대거 확인된 건 처음이다.
둘째로 이번에 출토된 한문 금속활자 중 일부는 세종 때 만들어진 금속활자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칭송받는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된다. 『자치통감』(1436년) 인쇄본과 대비해볼 때 1434년 만들어진 ‘초주갑인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가장 이른 시기의 조선 금속활자가 되는 것이며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 이전 금속활자 인쇄본을 가진 우리나라가 확실한 실물 활자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이 확인되기까지는 신중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그렇게 희귀한가.

“현재 중박 및 규장각 등에 보관된 수십만자의 금속활자는 대부분 17‧18세기 이후 주조된 것들이다. 이제까지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 금속활자는 중박 소장 을해자 한글활자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을해자 한자도 나오고 한글도 훨씬 많이 나왔으며 을유자(1465년) 한자활자도 나왔다. 일부 활자는 경자자(1420년)처럼 보이는데, 병자자(1516년)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든 조선 전기 활자가 이렇게 다수 나온 선례가 없다. 게다가 이전까진 조선왕실에서 조선총독부를 거쳐 박물관과 규장각 등으로 나뉘어 소장된 활자들인데, 이번엔 땅 속에서 처음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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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에서 유적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이곳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천600여 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 8점, 동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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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뉴스1]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뉴스1]

또 다른 유물도 나왔나.

“물시계 부속품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천문시계 부품,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銃筒), 동종(銅鐘) 등 모두 금속 유물이다. 특히 조선 전기 때 물시계와 천문시계를 주목해야 한다. 먼저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부속품 주전(籌箭)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나왔다.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기록으로만 전해온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부품도 나왔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장치다. 1437년(세종 19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나오는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 시기 과학기술의 실체를 엿볼 수 있게 됐다.”

이 유물들이 나온 곳은 어디인가? 누가, 왜 묻었나

“지난해 3월부터 수도문물연구원이 발굴 조사해 온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이다.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지명상 인사동이며,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이 일대엔 조선시대 유물이 떡시루처럼 층층이 쌓여있는데, 이 중 16세기에 해당하는 층위에서 유물들이 나왔다. 금이 간 항아리가 발견돼 진흙을 걷어내니 금속활자와 다른 유물 파편이 쏟아졌다. 희한한 것은 금속활자는 물론 다른 유물들까지 모두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궁궐, 왕실에서나 가능한 것들인데, 출토된 곳은 관가 건물이 아니라 시전(市廛)과 관련된 중인들이 거주하던 건물로 보인다는 점이다. 누가 묻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유물을 일부러 조각내고 잘라 넣어 사실상 ‘재화 재활용’으로 남긴 게 아닌가 한다.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누군가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으로 피란 가면서 급박하게 파묻었다가 되찾지 못한 게 아닌가 추정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발굴 성과 및 유물 가치 설명: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 백두현 경북대 교수(국문학),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 과장, 이용삼 전 충북대 교수(천문우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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