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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의 잠행 첫날,휴대폰이 꺼졌다…尹 “인격적으로 훌륭”

중앙일보

입력

사퇴 의사를 밝힌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 감사원을 나서며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관용차로 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사퇴 의사를 밝힌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 감사원을 나서며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관용차로 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감사원장직에서 물러난 다음 날인 29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최 전 원장은 전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의 최측근으로 언론에 입장을 대신 전하기도 했던 강명훈 변호사도 휴대전화를 껐다. 강 변호사는 전날 기자들에게 “본인(최 전 원장)이 직접 향후 진로를 밝히기 전에는 당분간 전화를 꺼놓을 것이다. 양해 부탁드린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최 전 원장과 그의 측근들은 이날부터 잠행을 시작했다.

최 전 원장은 전날 감사원을 퇴근해 서울 종로구 구기동 감사원장 공관에 들러 간단한 짐을 챙겨 가족들과 함께 떠났다고 한다. 감사원 내부망엔 비서를 통해 퇴임사를 올렸다. “임기를 다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최 원장은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면서 “국가 최고 감사기구로서의 감사원을 더욱 발전시키리라 믿는다”라고도 썼다. 다만 자신의 정치 행보와 관련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전 원장은 한동안 공식 일정 없이 자신의 정치적 진로와 메시지를 고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 여론도 큰 만큼 정치 선언의 명분을 세우기 위한 시간이다. 정치 선언과 국민의힘 입당 시점도 고민의 대상이다. 최 원장이 다음 달 중 정치 선언을 하고, 8월 초엔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文이 나쁜 선례" vs "헌정 유린"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왼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왼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치권은 최 전 원장의 사퇴를 두고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를 권유했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월성 1호기) 원전 감사에서 보여줬듯이 최 전 원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썼다. 전날 최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던 문 대통령의 입장을 언급하면서다.

정 전 의장은 또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기관이 권력의 외풍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국가운영이 바로 아주 나쁜 선례”라며 최 전 원장 사퇴는 “순전히 현 정권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썼다. 그는 문 대통령의 입장을 “내로남불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하면서 “본연의 자세를 지킨 사람들이 왜 이 정권의 연장을 멈추고자 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성찰부터 가졌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최 전 원장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그만뒀지만,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도 넘은 압박, 갑질에 따른 사퇴였다"며 "국민의힘은 언제든지 환영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최 원장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굉장히 온화하고 법관으로서 기품 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감사원장 재임 과정을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보며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고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고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뉴스1

반면 여당은 최 전 원장을 향해 “헌정 유린”, “단죄” 등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라디오에서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이나 대선 직행을 하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 대단히 모욕적”이라며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헌정 유린이고, 국정농단 사태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재형, 윤석열은 국민이 만들어 준 임기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헌신짝처럼 버린 점에서 판박이”라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죄돼야 한다”고 썼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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