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진 찍어드립니다

할머니와 처음 찍는 사진…대학생 손자 눈물 그렁그렁한 사연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6:00

업데이트 2021.07.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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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아끼느라 웬만해선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외할머니는 손자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름값 아끼느라 웬만해선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외할머니는 손자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학교 4학년이며, 졸업을 앞둔 23살 최성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온 조손 가정의 아이입니다.

6살 어린 나이에 세종시 외곽에 사시는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난 뒤,

지금까지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7년이나 지났네요.

할머니는 늘 밭에서 사시는 농사꾼입니다.

올해로 여든여섯이 되셨음에도 호미를 놓지 않고,
고추·깨·고구마 등의 작물을 심으실 정도로 강인하십니다.

지금까지 단 한 해도 농사를 거르신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저는 이런 할머니 밑에서 어깨너머로 이런저런 농사를 배우며,

온전히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라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방황하는 저의 마음을

할머니는 늘 거친 손으로 보듬어주셨지요.

처음에는 농사 거들기 싫어서 도망가기도 하고,

겨울에 쓸 땔감을 구하기 싫어 투정부리며 대들기도 했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강인하게, 또는 부드럽게,

거친 흙을 고르게 하듯, 제 맘을 닦아 주셨습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할머니 속은
오죽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딸을 마음에 묻고,

그 딸의 유일한 아들인 저를 거두던 할머니의 마음은
시리다 못해 사무친 마음이었을 테죠.

멀리 있는 대학에 오게 되어 할머니와 이별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 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못난 할매의 손에서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씀이

제게는 큰 고마움이자 아울러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저는 부모라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 적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찍은 사진도,
부모님의 목소리를 담을 기회도 없었죠.

대학 친구들이 어버이날 부모님과
이런저런 추억을 쌓았노라며 말할 때,
저는 멋쩍은 미소 몇 번 남긴 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어른이 되었다면 참 많은 것을 남겼을 텐데,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참 많은 추억 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저를 키워준 할머니가 계십니다.

제게는 여느 부모님보다 더 멋진 부모이고,

제가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참 야속한지라
갈수록 쇠약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용기를 내봅니다.

할머니의 유일한 소원은
제가 어서 취직해서 장가들고 온전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지만,

저는 할머니와 저의 모습을 한장의 멋진 사진,
멋진 추억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가 나이가 들고 멋진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제 자녀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 훌륭한 할머니가 계셨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을까요?
최성민 드림

할머니를 안은 손주는 어느새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요. 처음으로 할머니와 찍는 사진이니 감정이 북받쳤던 겁니다. 김경록 기자

할머니를 안은 손주는 어느새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요. 처음으로 할머니와 찍는 사진이니 감정이 북받쳤던 겁니다. 김경록 기자

할머니와 손주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함께 서자마자 손주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홍당무도 그런 홍당무가 없을 정로도 빨개 진 겁니다.

바람이라도 슬쩍 불면 금세 툭 떨어질 만큼
눈물도 그렁그렁합니다.

할머니와 처음 찍는 사진이니 울컥한 겁니다.
분위기를 돌릴 겸
할머니에게 손주 자랑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손주, 대학 내내 장학생이여.
책(나의 멘토 소크라테스/2016년)도 냈고,
얼마나 착한지 요새도 하루 두 번씩 전화해요.
내가 허리, 다리도 아픈 데다
10년 전에 위암 수술도 했으니
제 딴엔 걱정인 게지.
쟈는 어째 맨날 내 걱정만 해요.”

손자는 대학 졸업 후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공부하는 건 좋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늘 애달프고 걱정입니다. 손주는 늘 할머니 건강이 걱정이고요. 이래저래 서로 걱정인 할머니와 손자입니다. 김경록 기자

손자는 대학 졸업 후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공부하는 건 좋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늘 애달프고 걱정입니다. 손주는 늘 할머니 건강이 걱정이고요. 이래저래 서로 걱정인 할머니와 손자입니다. 김경록 기자

손자가 쑥스러운 듯 답을 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제게 해준 거에 비하면 암 것도 아니죠.
제가 자다가 새벽에 추울까 봐
어김없이 다섯 시에 아궁이에 불 넣어 주시고,
갑자기 비 오면 학교에 우산까지 가져다주셨어요.
학교 늦으면 저 오토바이로 학교까지 태워주시고요.”

마당 한쪽에 사륜 오토바이가 보였습니다.

비닐로 고이 덮인 걸 보니
무척 애지중지하는 오토바이 같았습니다.

손자가 오토바이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원래는 기름값이 아까워
웬만해서는 타지 않으시는 데요.

제가 필요할 땐 늘 태워주십니다.

어릴 때 학교 늦을라치면 어김없이 그랬고요.

요즘도 서울 올라갈 때면 읍내까지 태워주시고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할머니께
손자 오토바이를 태워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할머니와 손주에겐 무엇보다 오토바이 추억이 각별하니까요.

할머니는 거추장스러운 한복을 벗고,
손자를 뒤에 태운 채 홀가분하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난 할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한 바퀴 도니 얼마나 시원한지 몰러요.”

“폭주족 할머니와 뒷자리 손자인가요? 하하”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서야
할머니와 손자의 인생 사진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촬영 후, 손자도 서울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손자는 서울 행을 마다하고
할머니와 옥신각신합니다.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 대화지만,

어느 쪽도 굽힐 맘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늦었는디. 어여 가.”

“마늘 옮겨 놓고 갈규.”

“날 더운 디, 걍 냅둬.”

“금방 해놓고 가면 되유”

“가, 어여. 이리 더운디”

“잠깐이면 된데니께유”

밭에 뽑아 둔 마늘을 옮기는 일로 벌인
할머니와 손주의 고집 대결,

누가 이겼을까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답을 알 겁니다.

권혁재 ·김경록 기자

결국 손자가 이겼습니다. 먼저 밭으로 나선 손자를 어느새 외할머니가 뒤따랐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결국 손자가 이겼습니다. 먼저 밭으로 나선 손자를 어느새 외할머니가 뒤따랐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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