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에 망상 악화된 엄마, 5살 딸 살해후 "꿈꾼줄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0년 6월 엄마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야기 시바난탐(당시 5세).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

2020년 6월 엄마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야기 시바난탐(당시 5세).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

지난해 6월 영국 런던에서 어린 딸을 살해한 엄마에 대해 재판부가 코로나19로 우울증과 망상이 악화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신병원 수감을 명령했다.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리랑카 출신의 수사 시바난탐(36)은 2020년 6월 자택에서 딸과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이웃 주민들이 모녀를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딸은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시바난탐은 장 파열 등 심각한 상처를 입고 약 1년간 병원 치료를 받았다.

조사 결과 시바난탐은 딸을 흉기로 찌르고, 스스로 자해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세상을 떠나면 딸이 혼자 남겨질까 걱정됐다”면서 “나는 꿈을 꾼 줄 알았다. 내가 딸을 해치고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시바난탐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24일 사건 1년 만에 열린 재판에서 시바난탐의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고의적 살인이 아닌 정신 이상에 의한 우발적 범행이었고 주장했다.

그의 남편 수간탄 시바난탐은 법정에서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범적인 엄마’였다”면서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아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봉쇄령으로 런던 거리가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2020년 12월 봉쇄령으로 런던 거리가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남편은 시바난탐이 2019년 가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호소해왔다고 증언했다. 시바난탐은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했지만, 의사들이 그의 우울증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다.

남편은 “아내는 사건 전날 나에게 자신이 죽으면 아이들을 홀로 돌볼 것이냐 물었고, 사건 당일에는 회사에 나가지 말라고 했었다”며 평소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못해 비극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법정에서는 코로나19가 그의 우울증과 망상을 더 악화시켰을 수 있다는 의사들의 증언도 나왔다.

시바난탐의 진료한 정신과 의사 니겔블렉우드 박사는 “그가 우울증과 망상을 앓아왔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령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시바난탐의 주장에 대해선 “그는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준의 행위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시바난탐 측은 의사들의 진단과 과거 시바난탐의 이상 행동을 근거로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며 감형을 호소했다.

재판부는 시바난탐 측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다. 판결을 맡은 웬디 요셉 판사는 “피고는 원인이 불분명한 질병으로 고통받아왔고, 사건 당시 자신이 코로나19로 죽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속에 소원해진 관계 속에 그의 상태를 의사를 포함한 주변 사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해 발생한 끔찍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바난탐이 딸을 살해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신이상에 의한 비고의적 살인(manslaughter)죄’를 적용하고, 무기한 정신병원 수감을 명령했다.

이민정 기자·장민순 리서처 lee.minjung2@joongang.co.kr

◇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국제뉴스

알고 싶은 국제뉴스가 있으신가요?
알리고 싶은 지구촌 소식이 있으시다고요?
중앙일보 국제팀에 보내주시면 저희가 전하겠습니다.
- 참여 : jglob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