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도 열연 채송화…실제 교수 "밤마다 중환자실 걸려온 전화는…"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5:00

업데이트 2021.06.29 22:09

인생 40년 차를 넘겼지만 여전히 성장통을 겪는 99학번 의대 동기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은 주인공 5인을 이렇게 소개한다. 의학 드라마 탈을 썼지만, 직업이 의사, 배경이 병원일 뿐 그저 평범한 사람 얘기로 공감을 끄는 게 슬의생 인기 비결이다. “선하고 인간적이라 현실에는 있을 법하지 않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드라마”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극 중 김준완, 채송화, 안정원은 실재했다. 3인의 모델이 된 양지혁(흉부외과), 오수영(산부인과), 이상훈(소아외과) 삼성서울병원 교수를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병원 본관에서 만났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주인공들(위)과 드라마를 자문한 오수영(산부인과), 양지혁(흉부외과), 이상훈(소아외과) 삼성서울병원 교수(아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주인공들(위)과 드라마를 자문한 오수영(산부인과), 양지혁(흉부외과), 이상훈(소아외과) 삼성서울병원 교수(아래).

“밴드 연주 빼고 똑같다”

드라마를 본 소감을 묻자 세 교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양지혁 교수는 “(미디어에서) 의사가 권력의 화신처럼 그려질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환자가 무사한 게 내가 무사한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하루를 잘 넘기려는 일반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교수는 “의사들이 겪는 고충,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아픔과 기쁨 등 평상시의 모습이 충분히 반영돼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의과대학 동기 40명 중 10명이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밴드 연주하는 것 빼고 우리와 똑같다’고 말한다”라고도 전했다. 배우들이 실제 외래와 수술에 참관해 밀착 관찰한 것도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외과는 아무래도 수술 장면이 많은데 양 교수는 연습용 도구를 챙겨 매니저에 직접 전달했다고도 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자문한 삼성서울병원 양지혁 심장외과, 오수영 산부인과, 이상훈 소아외과 교수(오른쪽부터)가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임현동 기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자문한 삼성서울병원 양지혁 심장외과, 오수영 산부인과, 이상훈 소아외과 교수(오른쪽부터)가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임현동 기자

89즈의 찐케미

극 중 인물과의 싱크로율은 어떨까. 이상훈 교수는 “비슷한 것 같다”며 “주변에서 안정원 선생이 외래 볼 때 하는 말투 등이 ‘너랑 똑같다’고 하더라. 참관 때 환자 대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해서인 듯하다”고 말했다. 안정원이 소아외과 의사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교수는 “환자가 소아이다 보니, (의사들도) 대체로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편”이라고 했다. 시즌 1 종영 당시 방송 말미에 짧은 인터뷰가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이 교수 모습을 보고 인터넷에선 “안정원 선생이 나이 들면 저렇게 보일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양지혁 심장외과, 오수영 산부인과, 이상훈 소아외과 교수(왼쪽부터). 임현동 기자

삼성서울병원 양지혁 심장외과, 오수영 산부인과, 이상훈 소아외과 교수(왼쪽부터). 임현동 기자

양지혁 교수는 “준완이 연기하는 게 딱 흉부외과답다. 환자한테 정은 많으나 말이 짧고 뭔가 결정할 때는 빠르고 단호하다”고 말했다. 오수영 교수는 “극 중 채송화는 화도 한번 안 내고 아주 훌륭한 교수인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신체적으로 아주 닮은 두 가지가 있다. 신발 사이즈(225)와 목 디스크”라고 했다. 시즌 1 때만 해도 없던 목 디스크가 최근 생겼다고 했다. 옆에서 양 교수가 “네가 싱크로를 맞췄구나”라며 웃었다. 두 교수는 89학번 동기로 같은 의대 같은 반 출신이다. 슬의생 99즈의 진짜 케미가 두 교수에서 나왔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친근해 보였다. 양 교수는 “가나다순으로 반을 정하다 보니 오 교수와 같은 반이었다. 6년간 붙어 다녔다”고 말했다. 이상훈 교수는 두 교수보다 한참 후배인 97학번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전미도(오른쪽)와 채송화 실제인물 오수영 교수. [출처: 중앙일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전미도(오른쪽)와 채송화 실제인물 오수영 교수. [출처: 중앙일보]

아이 숨진 병원 찾는 연우 엄마, ‘현실 준완’도 감동

드라마 곳곳에 실제 이들의 에피소드가 직간접적으로 녹아있다. 실밥을 뽑아야 하는데 힘들어하는 어린 환자에 쩔쩔매면서도 속상해하는 엄마를 도리어 위로하거나, 아이에게 붙여줄 뽀로로 밴드를 직접 고르는 모습, “몇 살까지 살 수 있냐”고 묻는 어린 환자에게 “선생님보다는 오래오래 살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양 교수는 소아 환자를 위해 직접 캐릭터 밴드를 사다 놓곤 한다.

이상훈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이상훈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양 교수는 “연우 엄마의 얘기를 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라고도 했다. 최근 방영된 시즌 2 1화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병원에 살다시피 하다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연우의 엄마가 병원에 몇달 째 찾아오는 얘기가 나온다. 엄마는 병원에 와야만 ‘연우 엄마’ 소리를 듣고 그 말이 좋아 오는 것이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모델된 의사 3인 인터뷰

양 교수도 과거 비슷한 사연을 겪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밤마다 중환자실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시간에 아이 생각이 나는데,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의료진밖에 없어 그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 말했다.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이 교수는 “환자를 봐야 하는 간격보다 훨씬 자주 오려는 분들이 가끔 있다”며 “보호자인 엄마가 몸이 불편한 아이를 24시간 돌보다 보니 얘기할 대상이 없어서인가 싶어 언제든 오라고 한다. 아이를 잠깐 보고 엄마와 10~15분 얘기 나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지만, 아이한테 또 가족한테 그 외로 도와줄 부분이 있으면 역할 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사진 삼성서울병원 제공.

전공의와 교수의 연애, 현실에선

전공의와 교수간 러브라인을 보여주는 장겨울과 안정원. 사진 '슬의생' 캡처.

전공의와 교수간 러브라인을 보여주는 장겨울과 안정원. 사진 '슬의생' 캡처.

극 중 러브라인이 꼭 판타지만은 아니라고 한다. 양 교수는 “교수와 전공의 간 연애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알려지면 파장이 커 굉장히 조심하지만 병원마다 한두 사례씩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상훈, 오수영 교수도 각자 동료 의사와 결혼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니 정이 든다. 연애, 결혼하는 의사 커플이 많다. 나도 의국 2년 후배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미묘한 관계의 송화-익준 커플처럼 동기와 연애해 결혼했다. 자문한 만큼 러브라인의 결말도 이미 알 법하지만 양 교수는 “송화-익준 커플이 잘될 것 같냐고 자꾸 묻는데, 나도 모른다. 의학 관련된 부분만 잘라서 대본이 온다”며 웃었다.

“인생 축소판”…심장 이끌려 흉부외과 지원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사진 '슬의생' 캡처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사진 '슬의생' 캡처

병원이 어떤 곳인지 묻자 오 교수는 희로애락이 담겨 “인생 축소판 같다”고 했다. 이상훈 교수는 “병원은 직장이지만 아픈 아이들이 좋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과정에 내가 개입할 수 있게 기쁨을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슬의생에서 의사들은 퇴근 후 취미로 밴드를 한다. 현실에선 일 끝나고 주로 가정생활에 충실하는 3인이지만 오 교수는 최근 틈틈이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게 여가라고 했다. 지난해엔 책(‘태어나줘서 고마워’)도 냈다. 오 교수를 거쳐 간 산모와 아기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이자 워킹맘으로 항상 단단한 줄만 알았는데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었다”. 절친 양 교수의 한줄평은 이렇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밴드 장면. 사진 '슬의생' 캡처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밴드 장면. 사진 '슬의생' 캡처

드라마 제작팀은 자문해준 3인 교수 이름으로 병원에 6900여만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의학을 배울 때 ‘환자가 의사의 스승’이란 얘기를 듣는데, 백번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가 ‘의사생활’을 표방하지만 결국 그 얘기의 시작은 환자이고, 의사는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며 “제작진도 이런 마음에 공감하고 기부를 하게 된 것이라 본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기부금은 간이식을 대기 중인 어린이 환자들에 쓰일 예정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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