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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도 않고 투기꾼 믿나" 김기표 비호한 靑, 여당도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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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투기 의혹으로 경질되면서 청와대 인사ㆍ민정수석 등 ‘인사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28일 정치권에서 표출됐다. 심지어 여당에서도 '김외숙 책임론'이 거센 상황이지만, 유독 청와대에서만 아직까지 “인사라인에 대한 경질 계획은 전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김진국 민정수석(왼쪽)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진국 민정수석(왼쪽)과 김외숙 인사수석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진행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왜 이런 사안이 검증되지 않고 (김 전 비서관이) 임명됐는가에 대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며 인사라인에 책임을 물었다. 백혜련 최고위원은 특히 김외숙 수석을 겨냥해 “총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경질을 요구했다.

인사 참사 때마다 무풍지대 김외숙 #청와대는 “거취 논의 없다” 선그어

토지대장에 따르면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은 경기도 광주 맹지를 2017년 6월에 매입했다. 경기도는 1년 뒤인 2018년 8월 광주시가 제출한 송정지구 개발 계획을 인가했다. 송정지구는 김 비서관의 땅에서 1km 가량 떨어져 있다. 중앙포토

토지대장에 따르면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 비서관은 경기도 광주 맹지를 2017년 6월에 매입했다. 경기도는 1년 뒤인 2018년 8월 광주시가 제출한 송정지구 개발 계획을 인가했다. 송정지구는 김 비서관의 땅에서 1km 가량 떨어져 있다. 중앙포토

여당은 그간 지속된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 특히 인사라인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류가 다르다.

익명을 원한 한 여당 의원은 “과거 인사문제는 정치공세의 측면도 있었지만, 이번 투기 건은 너무나 명백한 부실검증”이라며 “특히 LH사태로 온 국민이 투기에 민감한 상황에서도 인사라인이 ‘검증의 ABC’도 거치지 않고 ‘투기꾼’(김 전 비서관)의 말만 믿었거나, 의혹을 돌파할 수 있다고 오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갔다간 대선에까지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 전 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정황은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위성사진만 대조해도 쉽게 확인된다.

김 전 비서관의 ‘맹지(盲地)’가 있는 경기도 광주시의회 관계자는 “이곳은 지역구 국회의원(임종성 의원)까지 투기로 탈당 권유를 받았을만큼 공인된 ‘우범지대’인데도 현장 확인 한 번 없이 당사자의 말만 믿고 임명한 것 같다”며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김 전 비서관 땅 주변에 지역 정치인과 유지들의 땅이 즐비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28일 오후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8억 2190만원이라고 신고한 경기도 광주의 컨테이너 건물. 김 전 비서관은 해당 건물을 '공실인 상가'라고 신고했지만, 컨테이너는 비어있었다. 김 전 비서관의 땅 인근의 타인 소유의 땅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컨테이너 상가'가 들어서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8억 2190만원이라고 신고한 경기도 광주의 컨테이너 건물. 김 전 비서관은 해당 건물을 '공실인 상가'라고 신고했지만, 컨테이너는 비어있었다. 김 전 비서관의 땅 인근의 타인 소유의 땅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컨테이너 상가'가 들어서 있다. 연합뉴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도 “김 전 비서관이 8억 2190만원으로 신고한 상가 건물은 위성사진만 봐도 컨테이너로 만든 ‘유령상가’라는 점이 확인된다”며 “특히 맹지에 접해있는 유령상가 땅에 김 전 비서관이 기부채납 등으로 언제든 도로만 놓으면 맹지는 당장 몇배 비싼 땅이 되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청와대는 도대체 뭘 검증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전 비서관은 지난 26일 “개발 인근지 맹지를 매입했다”는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도로가 개설돼도 개발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토지 취득 때 인지했으니 지가 상승 목적의 매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발을 막는 내용이 포함된 조례는 토지 매입 2년 3개월 뒤에 시행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거짓 해명으로 드러났다. 김 전 비서관은 결국 맹지와 함께 산 인접 부지에 컨테이너 건물을 지은 사실까지 드러나자 사표를 냈다.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이 매입한 경기도 광주시의 '맹지'(붉은선). 바로 앞 사각형 건물은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건물로, 김 전 비서관은 이 건물을 8억 219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이 매입한 경기도 광주시의 '맹지'(붉은선). 바로 앞 사각형 건물은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건물로, 김 전 비서관은 이 건물을 8억 219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안에 대한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 명백한 상황이지만, '김외숙 책임론'에 대한 청와대의 방어는 견고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외숙 인사수석ㆍ김진국 민정수석에 대한 책임론을 듣고 있다”면서도 “현 시점까지 두 사람의 거취와 관련한 어떠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일과 관련해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2019년 5월 임명된 김 수석의 경우엔 늘 야당 공세의 타깃이 돼 왔다. 최근에도 ‘도자기 밀수 의혹’을 받았던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택시기사를 폭행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현 정권의 대표적인 '인사 참사'속에서도 늘 ‘무풍지대’에 있었다. 심지어 지난해 다주택 소유를 이유로 김 수석이 다른 참모들과 집단사표를 냈을 때도 문 대통령은 김 수석의 사표만은 반려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과 김 수석의 오랜 인연이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김 수석은 1992년부터 노무현ㆍ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였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활동했다. 민변 출신으로 “노동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문 대통령을 직접 찾아온 ‘30년 인연’으로 유명하다.

김외숙 인사수석(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외숙 인사수석(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5선의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인사수석과 민정수석 등 인사와 검증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이 이번에도 책임론을 피해갈 경우 비난의 화살이 대통령을 직접 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의원은 이어 “문 대통령도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사표를 내지 않았느냐. 더이상 참모들을 감쌀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던 2005년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3일만에 사퇴하자 김우식 비서실장, 정찬용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 등과 함께 사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집단 사표를 낸 6명 중 직접 책임이 있는 인사ㆍ민정수석 등 2명을 바꿨다. 그리곤 “실제 잘못은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사과했다.

'법무법인 부산' 간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김외숙 인사수석의 이름이 있다. 법무법인 부산 홈페이지

'법무법인 부산' 간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김외숙 인사수석의 이름이 있다. 법무법인 부산 홈페이지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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