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영준의 시시각각

홍콩의 펜,베이징의 칼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0:37

업데이트 2021.06.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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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의 벽을 넘지 못하고 24일 마지막 신문을 발간하며 26년 역사를 끝냈다. 빈과일보의 24일자 1면. 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의 벽을 넘지 못하고 24일 마지막 신문을 발간하며 26년 역사를 끝냈다. 빈과일보의 24일자 1면. 연합뉴스

 통심질수(痛心疾首). 마음이 아파 병이 난다는 뜻인데, 슬픔이나 분노가 극한에 이를 때에만 쓰는 표현이다. 1989년 5월 21일 자 홍콩 문회보의 사설란은 이 네 글자가 전부였다. 바로 전날 베이징 전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광장의 학생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그로부터 2주 뒤 천안문에서 일어난 비극적 유혈 사태를 문회보의 논설위원들은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의 중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소유ㆍ운영하는 매체인 문회보의 필진은 무력진압에 반대하는 사설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 글자만 쓰고 나머지 공간을 비워 둔 것이다. 지금도 연세 지긋한 홍콩인, 특히 언론ㆍ출판 분야에서 일한 분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일화다. 친중 매체도 그런 식으로 항의를 표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과거의 홍콩은 그랬다.

중국 당국의 탄압에 굴복한 듯 보여도
빈과언론이 뿌린 자유언론의 씨앗
진흙 속에서 더 큰 나무로 자랄 것

빈과일보가 종간호를 발간하던 지난 24일, 필자는 나머지 홍콩 신문들이 이를 어떻게 보도했나 검색해봤다. 제아무리 중국 당국의 서슬이 시퍼렇다고 해도 한두 군데쯤은 ‘통심질수’라 쓴 매체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기대는 깨졌다. 대신 이런 사설이 눈에 띄었다. “천안문 사태를 추모하는 촛불이 꺼지고 빈과일보가 폐간되었다. 2∼3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홍콩에는 단 하나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국가의 편에 서서 국가발전의 큰 국면 속으로 융화해 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의 대외 문호 역할과 함께 국가의 안전을 호위해야 한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홍콩판에 났음직 한 사설을 게재한 신문은 다름 아닌 명보(明報)였다. 무협소설 대가 진융(金庸)이 일으켜 세운 이 신문은 중국 공산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정론지로 꼽혀 왔다. 빈과일보처럼 반중(反中)도 아니었지만 노골적 친중(親中)은 더더욱 아니었다. 필자도 베이징 특파원 시절, 가상네트워크(VPN)를 경유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 신문을 애독했다. 언론 통제를 받는 중국 신문들에선 볼 수 없는 권력 심층부의 동향이나 속사정을 폭로하는 기사가 가끔씩 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명보가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자기 위치를 다시 정립하자”고 나왔다. 명보뿐 아니라 거의 모든 홍콩 신문ㆍ방송의 논조가 바뀌었다. 끝내 타협하지 않고 자기 색깔을 지키던 빈과일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탄압은 진행형이다. 빈과일보의 다음 타깃으로 지목되던 인터넷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은 문제가 될 만한 필진들의 칼럼과 논설을 모두 홈페이지에서 내렸다. 이사 8명 가운데 6명은 사직서를 냈다. 빈과일보의 전 주필은 공항에서 체포됐고, 명보에 예리한 칼럼을 기고해 문명(文名)을 날리던 대학교수는 절필을 선언했다. 탄압의 광풍을 일으키는 자들이 노리는 건 자기검열이다. 빈과일보의 한 기자는 고백했다. “편집 간부가 체포될 때마다 화장실에서 울었다. 기사를 쓰면서 나도 잡혀가지 않을지 걱정한다. 그런데 이 직업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다. 비극이다.” 이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통심질수의 뜻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필자만의 느낌일까.

2017년 6월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를 주장하는 홍콩 시위대가 '통심질수'라 쓴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2017년 6월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를 주장하는 홍콩 시위대가 '통심질수'라 쓴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금언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리튼이 남긴 말이다. 원문을 보면 그 말 앞에 “전적으로 위대한 사람의 통치 하에서”란 조건이 붙어 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은 이 조건에서 비켜나 있어 일어난 일이다. 정녕 '홍콩의 펜'은 '베이징의 칼'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일까. 자유언론의 역사는 그런 패배주의를 부정한다. 빈과일보가 남긴 마지막 글 속에 답이 있다.  “사과는 진흙 속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뿌려진 씨가 자라면 더 큰 사과나무가 될 것입니다. ” 빈과는 중화권에서 통용되는 사과의 다른 이름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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