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샤넬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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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해리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12세에 수녀원에 보내진 그는 7년간 바느질을 배우며 지냈다. 수녀복 의상의 흑백 조화와 수녀원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후 그의 취향과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앙리 지델, 『코코샤넬』 39쪽)

한때 가수활동도 한 그는 1913년 자신의 부티크를 오픈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면서 화려한 장식보다 단순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 때였다. 이에 맞춰 샤넬은 남성용 의상에 쓰이던 가벼운 저지 천을 활용한 투피스를 선보였다. 20년대에는 코르셋과 무거운 속치마를 벗어난 니트 카디건과 원피스 등 편안한 옷을 선보였다. 이렇듯 샤넬의 실용주의는 최상류층을 겨냥한 귀족 마케팅과 함께 브랜드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1971년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나고 카를 라거펠트가 1983년에 합류한 후에도 샤넬의 명성은 꾸준히 이어졌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상징과도 같은 ‘CC’로고를 만들었다. 샤넬백의 시그니처라고도 불리는 클래식 플랩 백도 라거펠트가 기존의 빈티지 백을 재해석하며 내놓은 제품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인기다.

샤넬을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유별나다. 전국 10개도 안 되는 매장에는 새벽부터 오픈런을 하기 위한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픈 전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간다는 의미로 해외선 보기 드문 풍경이다. 원하는 제품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재고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제품을 구할 때까지 그저 매일 새벽 백화점 앞에서 기다릴 뿐이다. 소량만 입고되는 탓에 남보다 더 일찍 가서 앞줄에 설수록 제품을 구매할 확률도 높아진다. 지난해 샤넬코리아의 영업이익은 1491억원으로 1년 새 34.4% 증가했다. 2019년 기준 샤넬 글로벌 매출은 122억7300만 달러, 이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가량이다. 샤넬백 10개 중 1개는 한국인이 구매한 꼴이다. 내달 1일 샤넬백 주요 제품의 가격이 12%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최근 샤넬 매장의 대기행렬은 더욱더 길어지고 있다.

화려하고 불편한 패션에 도전장을 내밀고 실용성과 편안함을 추구한 샤넬. 샤넬백을 품기 위해 이토록 불편함을 감수하는 한국 소비자들을 보면 과연 가브리엘 샤넬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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