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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총장·감사원장이 정치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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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사정기관의 수장을 맡았으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 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사정기관의 수장을 맡았으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 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오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구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다. 어제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한민국을 위한 역할을 숙고하겠다”며 사퇴했다. 정치권은 사실상 대선 출마 수순으로 본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두 사정기관의 수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정치 참여에 나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오늘 대선 출마 선언, 최재형은 어제 원장직 사퇴 #청와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사태 자초한 정권 책임 커

특히 최 감사원장의 사퇴가 남다르다. 검찰청법에 임기(2년)가 명시된 검찰총장과 달리 감사원장은 헌법이 임기(4년)를 보장한 헌법기관장이다. 헌법은 삼권분립을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대법원장의 임기를 명시하고 있는데, 감사원장에 대해서도 그렇다. 최 원장이 헌법정신과 그 무게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저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말한 것도 그런 고심의 발로일 것이다. 최 원장을 향한 일각의 비판이 일견 합당해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정치 참여를 비난만 할 수 없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이런 사태를 자초한 1차적 원인이 문재인 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수사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사건에 대한 감사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두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을 무너뜨리고 궁지로 몰았다.

1년여 동안 윤 전 총장을 내쫓기 위해 벌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무리수나 최근 박범계 장관의 정권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 등이 대표적이다. 최 원장은 월성 원전 감사를 하다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고, 시민단체의 고발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처지로 내몰렸다. 사실상 감사원·검찰의 제도적 근간을 흔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유독 법치가 강조되는 이유는 선출 권력이 다수의 폭정으로 치달을 위험성 때문이다. 감사원과 검찰은 권력의 독주를 견제할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걸 위해서 감사원에 대해선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못박았고, 검찰은 형사사법을 담당하기에 준사법부로 대우한다.

이런 엄중한 사명을 가진 사정기관의 수장이 임기 도중 정치 참여를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아주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들이 향후 어떤 정치적 선택과 결단을 할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 훼손 시비가 인다면 그걸 감수해야 하는 건 그들의 몫이다. 청와대는 최 원장 사퇴에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라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전횡과 폭주, 법치의 훼손이 이들을 정치의 길로 불러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