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중앙 시조 백일장] 6월 수상작과 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0:03

업데이트 2021.06.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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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원〉

빈집
-김재용

열대성 저기압이 머물고 간 며칠 사이
독박 보초 서다 말고 돌아앉은 대문짝
대물린 항아리 서넛 속내 다 드러냈다

옴팍한 마당 가득 개망초꽃 무성한데
부엌문 열어젖히는 허기진 바람 한 점
뚜껑은
온데간데없이
무쇠솥에 고인 문득

◆김재용
김재용

김재용

1958년 경북 성주 출생. 2018년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 특별상(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중.

〈차상〉

걱정의 마음으로
-이정한

아침에 일어나니 달이 걸려있다.
한 밤새 눈물 담아
달 끝에 걸어두니
쏟을까
염려스러웠는지
지지 못한 초승달

〈차하〉

로드 킬
-김봉래

어쩌다 생의 끝을 길 위에 두었을까
정지된 화면처럼 풍경 속에 박힌 죽음
갓길에 내팽개쳐진 갑작스런 단절이다

어미 잃은 짐승의 울음소리 들리는 듯
한 방향 흐름 속에 만나고 헤어지고
그 중에 멈추는 것들을 이탈이라 할 거나

시간이 직선이면 생명은 동작이다
느리거나 빨랐던 지난 모든 순간들
속도가 추월한 운명, 바람눈이 사납다

〈이달의 심사평〉

이달의 장원은 김재용의 ‘빈집’이다. ‘문득’이라는 부사를 명사처럼 운용한 것이 신선했다. 많은 상상력이 집약돼 다소 낡은 ‘빈집’이라는 제목과 소재가 새로웠다. 스산한 빈집의 이미지가 잘 전해지기도 했고, 많은 것을 담고 있으나 간결하게 구성한 종장도 좋았다.

차상은 이정한의 단수 ‘걱정의 마음으로’다. 화자의 서정이 잘 느껴진 수작이다. 특히 종장의 이미지는 초장의 평이함을 다 덮을 정도의 힘이 전해졌다. 시조는 종장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차하는 김봉래의 ‘로드 킬’이다. 시골길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동물들의 교통사고 현장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속도가 추월한 운명’은 우리 인간들이 만든 것. 화자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셋째 수 초장 ‘시간이 직선이면 생명은 동작이다’라는 진술은 언뜻 비문 같아 고민했다. 남궁 증, 박종민의 작품도 끝까지 겨루었음을 밝힌다.

이 장은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 등용문 중 하나다. 우리 시가문학의 정수를 이끌고 갈 시조 시인 탄생의 장이다. 1~11월 장원ㆍ차상ㆍ차하 33명이 연말 장원 즉 ‘중앙신춘시조상’ 수상의 자리를 향해 달려간다.

다른 지면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 응모하거나, 월 당선자들이 다른 달에 원고를 보내면 안된다. 기다렸다가 12월 초에 잘 다듬어진 작품들을 응모해야 된다. 그 33명의 투고작들만으로 심사위원들은 단 한 명의 영광스러운 당선자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심사위원 : 강현덕(대표 집필), 서숙희

〈초대시조〉

데네브
-유선철

우주엔 천억의 은하, 은하엔 천억의 별
그렇다면 우주의 별은 천억 개의 제곱
지구는 먼지보다 작은데 슬픔은 별보다 많지

매품도 못 팔고 온 흥부의 귀가처럼
울음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골목 어귀
절망도 사치라면서 무릎 꿇은 풀잎들아
내딛는 걸음 걸음 날숨조차 버거울 때
고개 들어 백조자리 꼬리별을 만나보게
천육백 광년을 달려 지구에 닿은 별빛

견우와 직녀 사이 손을 잡아 이어주고
영혼의 부름켜에 훈김을 쏘아주는
데네브, 하늘 정원에
먼저 와서 기다리지

◆유선철
유선철

유선철

201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제5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제11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시집 『찔레꽃 만다라』

우주에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일정한 섭리와 질서가 있다. 시인들은 감히 발견이란 미명으로 무한대의 불법적 도용을 한다. 말이 쉬워 발견이지 그것에 도달하기까지는 은하를 관통하는 직관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지상에는 “별보다 많은 슬픔”이 살고 있다. “매품도 못 판” 흥부와 “무릎 꿇은 풀잎”의 절망이 그것이다. “날숨조차 버거울 때” 화자는 “백조자리 꼬리별”을 만나보라 청한다. 날숨이란 절망의 한숨이다. 보여주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 내러티브의 심층에 이 시의 골계미가 있다. “하늘 정원에 먼저 와서 기다리는” 희망 역시 드러내지 않는 언어의 역설이며 인간의 마음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릴 수밖에 없어 기도하는 순간이며 상존하는 인간세계에 대한 모순의 알레고리다.

오늘날 암담한 무능과 불공정, 부도덕의 아포리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며 해학의 슬기다. 천육백 광년을 달려온 백조자리꼬리별은 아무에게나 우연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찾는 자의 몫이며 그러므로 “영혼의 부름켜”가 희망이 아닌 절망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희망은 갈급한 사람이 아닌 갈구하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최영효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편수 제한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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