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으로 옷 만드는 기업, 日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페트병'으로 옷 만드는 기업, 日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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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에스터 공장에서 재활용 투명페트병으로 실을 뽑아내고 있다. 왕준열PD

폴리에스터 공장에서 재활용 투명페트병으로 실을 뽑아내고 있다. 왕준열PD

지난달 27일 경북 칠곡군의 폴리에스터 공장. 재활용된 투명 페트병을 원료로 실을 만드는 곳이다.

[플라스틱 어스]③부활-플라스틱은 왜 재활용하기 어려울까

공정은 간단하면서도 정교했다. 우선 재활용 페트병을 잘게 부숴서 만든 칩 알갱이들을 뜨거운 열로 녹인다. 이후 미세한 구멍에 통과시키면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굵기의 실을 뽑아낸다. 이렇게 페트병으로 만든 실(장섬유)은 기능성 의류나 운동화를 만드는 데 쓰인다.

“3000㎞ 실 뽑아내야…페트병 95%는 수입”

폴리에스터 공장에서 재활용 투명페트병으로 실을 뽑아내고 있다. 왕준열PD

폴리에스터 공장에서 재활용 투명페트병으로 실을 뽑아내고 있다. 왕준열PD

“10시간에 걸쳐 3000㎞ 정도 실이 감기는데 그 중간에 한 번이라도 끊어지면 정상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물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게 장섬유 리사이클이죠” -임영철 티케이케미칼 폴리에스터 공장장

임영철 공장장이 공정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이 업체는 국내 최초로 한 생수 업체와 손잡고 국산 투명페트병을 수거해 장섬유를 뽑고 있다. 하지만, 품질 기준에 맞는 충분한 양의 국산 페트병을 구할 수 없어 여전히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 투명 페트병을 수입해 쓰는 형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국내산 페트병 24만t 중 옷이나 용기를 만드는 장섬유로 재활용된 건 13%에 불과하다. 87%는 품질이 떨어져 솜이나 부직포 같은 저품질 재생제품으로 재활용됐다. 업계에서는 라벨 접착제 등이 국내산 페트병의 재활용 가치를 떨어뜨려 고품질의 페트병 재활용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임 공장장은 “국내산 페트병의 경우 라벨을 붙이는 접착제 성분이 중간에 실을 끊어지게 한다”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장섬유의 95% 정도는 일본 등 외국산 투명페트병을 수입해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통기한 늘리려고…전체 재활용 못쓰게 해”

탄산수 페트병을 자르자 껍질이 세겹으로 나뉘었다. 가운데에는 나일론이 들어있다. 왕준열PD

탄산수 페트병을 자르자 껍질이 세겹으로 나뉘었다. 가운데에는 나일론이 들어있다. 왕준열PD

페트병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경남 양산에서 친환경 페트병을 생산하는 한 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 대표인 안형배 씨는 설명 대신 보여줄 게 있다며 탄산수가 담긴 투명 페트병을 가져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투명 페트병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가위로 페트병을 잘랐더니 껍질이 세겹으로 나뉘었다. 그는 가운데 들어 있는 게 플라스틱의 일종인 ‘나일론’이라고 설명했다.

“안에 탄산이 잘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유통기한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 병이 투명 페트병을 모은 곳에 들어가면 전체를 재활용 못 하게 만들어버리죠.” - 안형배 대표

페트병은 재활용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나뉜다. 왕준열PD

페트병은 재활용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나뉜다. 왕준열PD

환경부는 재활용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포장재를 4개 등급(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으로 분류한다. 이중 복합 재질을 쓰거나 과도한 접착제를 사용해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어려움' 등급을 받은 페트병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39.9%로 추산된다. 안 대표는 “일부 생수병은 재활용이 잘 되는 최우수 등급의 페트병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음료나 식품을 담는 페트병은 대부분 재활용이 안 되는 페트병을 쓰고 있다”고 했다.

“생산 단계에서 재활용 고려해야”

한 마트에 진열된 식품용 페트병들. 대부분이 재활용이 어려운 페트병이다. 천권필 기자

한 마트에 진열된 식품용 페트병들. 대부분이 재활용이 어려운 페트병이다. 천권필 기자

전문가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려하는 동시에, 소비자가 재활용이 얼마나 용이한 페트병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재활용 등급제 표시를 전면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처음 물건을 만들 때부터 재활용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고 마지막 재활용 단계에서는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만들어야 한다”며 “중간에서 시민들이 아무리 분리배출을 잘하려고 발버둥 쳐도 양극단의 인프라가 안 받쳐주면 페트병 재활용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천권필·정종훈·김정연 기자, 왕준열PD, 곽민재 인턴,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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