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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美 북서부 80년 만의 기록적 폭염

중앙일보

입력

미국 오리건·워싱턴주 등 북서부에 사상 최악의 폭염이 강타했다.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던 지역에 불볕더위가 찾아오자 냉방기기는 동이 났고, 곳곳에서 정전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최고 기온 44.4도를 기록한 27일(현지시간)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한 공원 분수대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AP=연합뉴스]

최고 기온 44.4도를 기록한 27일(현지시간)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한 공원 분수대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AP=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미 기상청(NWS)에 따르면 27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기온은 44.4도까지 치솟으며, 1940년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최고 기온은 1965년 7월과 1981년 8월에 기록한 42도였다.

워싱턴주 시애틀의 기온도 전날 38.8도에 이어 이날 39.4도까지 올라갔다. 기상청은 시애틀에서 38도 이상 기온이 이틀 연속 이어진 건 1894년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미 기상청은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heat warning)’를 발령한 상태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공공도서관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을 자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주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공공도서관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을 자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시기 두 지역의 평년 기온은 22도 수준이다. 냉방시설을 갖춘 곳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무더위가 찾아오자 지난 주말 에어컨이 갖춰진 호텔 방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선풍기·에어컨 등도 동난 지 오래다. 냉방기기 사용이 늘면서 곳곳에서 정전도 잇따랐다. AP는 포틀랜드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으로 3000세대가 무더위 속에 주말을 보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폭염에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접종도 차질을 빚고 있다. 시애틀 등 대도시에선 실내 집합금지 규정을 완화하고, 공공 도서관 등에 간이침대를 들여 폭염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남부 킹 카운티는 접종자 건강을 우려해 코로나19 백신 야외 접종소를 당분간 폐쇄하기로 했다. 또 야외 수영장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열차는 뜨거운 열기로 선로가 느슨해진 탓에 저속 운행 중이다.

미 기상청은 태평양 연안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서 발생한 폭염이 내륙 아이다호주와 몬테나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 지도 캡처]

미 기상청은 태평양 연안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서 발생한 폭염이 내륙 아이다호주와 몬테나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 지도 캡처]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열돔 현상(heat dome)'이다. 열돔 현상은 지상 5~7㎞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두는 현상이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해안부터 북미 대륙 중앙의 대평원 지대까지 강력한 열돔이 형성되면서 전례 없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20년 넘게 지속한 서부 대가뭄도 기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땅이 머금고 있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더위를 식혀야 하지만, 오랜 가뭄으로 바짝 마른 지표면이 뜨거운 대기를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 기상청은 이번 폭염이 앞으로 북서부 지역 연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이다호주와 몬태나주 기온이 38도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며 당분간 외출과 야외 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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