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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코로나로 매출 급감, 상가 임대차 계약 깨고 싶은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34)

지난해 개정된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일정 기간 임대료를 연체하더라도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을 보장해 주고 있다. [사진 unsplash]

지난해 개정된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일정 기간 임대료를 연체하더라도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을 보장해 주고 있다. [사진 unsplash]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은 불과 몇 달 만에 우리 일상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현재로써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에 없던 법률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2020년 개정 상가임대차 보호법에서 일정 기간 임대료를 연체하더라도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여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을 보장한 것입니다.

반대로 코로나19로 인해 적자가 발생한 임차인의 경우 계약 기간이 남은 경우에도 계약을 해지해 임대료의 부담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가게 매출이 90% 이상 급감했다면 사정 변경 원칙을 적용하여 상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해 드립니다.

사례

액세서리 도·소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오던 A는 2019년 5월 B로부터 서울 명동에 있는 상가 건물의 1층 점포를 임대해 영업을 해왔다. 계약 조건은 임대 기간 3년, 보증금 2억 3000만 원, 월세 2200만 원이었다.

A와 B 사이에 체결된 임대차 계약서 제13조 4항에는 ‘당사자 중 일방이 법령의 개폐, 도시계획, 화재, 홍수, 폭동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 상대방에 대해 30일 전에 서면통지를 한 후 본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A의 주 고객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는데, 팬데믹 이전인 2019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월 매출은 약 5700만~8900만 원에 달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월 매출이 2020년 1월 3000만 원대로, 한 달 뒤인 2월에는 2000만 원대로 추락하더니 같은 해 3월부터 5월까지 100만~200만 원대로 급감했다. 이런 매출 급감으로 결국 A는 2020년 5월 중순 점포를 휴점했다.

A는 더 이상 가게 운영이 어렵다고 보고, 2020년 6월 임대인 B에게 ‘코로나19 사태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사유가 발생해 임대차계약 제13조 4항에 따라 2020년 7월 2일 자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B는 코로나19로 영업장에서 영업을 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 불가항력적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A는 B를 상대로 임대차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었다며, 임대차 계약의 해지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사정 변경으로 계약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법원은 사정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아 계약 해지를 인정했다. [사진 pixabay]

법원은 사정 변경으로 계약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법원은 사정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아 계약 해지를 인정했다. [사진 pixabay]

☞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의 입국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2주간 격리를 의무화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90% 이상 급감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A가 임차한 점포는 명동에 위치한 매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통한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A의 매출이 90% 이상 감소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코로나19는 ‘불가항력적인 사유’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사정 변경으로 인한 임대차 계약 해지는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법원은 ①코로나19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어 매출이 90% 이상 감소될 것이라는 사정은 A와 B는 물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고, ② 그러한 현저한 사정 변경의 발생과 관련해 A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 원칙적으로 사정 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해지 등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사정 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다만 ①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도 없었으며 ③ 그 사정 변경이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④ 당초의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공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기거나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동안 법원은 사정 변경으로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① IMF 사태로 인해 자재 수급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 ② 이른바 ‘키코(KIKO)’ 사건에서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한 경우 등은 사정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계약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법원은 사정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아 계약 해지를 인정한 것입니다. 비록 하급심 법원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사정 변경에 의한 계약 해지를 인정하여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코로나19로 영업에 피해를 본 임차인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참고로 법무부은 지난 5월 24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개월 이상 집합 금지 조치 또는 집합 제한 조치를 받은 임차인이 중대한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폐업신고를 한 경우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습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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