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잘 그리려는 욕심 버리자 손 가는 대로 창의력이 발휘됐죠

중앙일보

입력

황승민(왼쪽)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완성된 젠탱글 작품을 들어보였다. “젠탱글을 그리는 동안 다른 미술과 달리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고 소감을 전한 두 사람.

황승민(왼쪽)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완성된 젠탱글 작품을 들어보였다. “젠탱글을 그리는 동안 다른 미술과 달리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고 소감을 전한 두 사람.

박 교사는 “공인젠탱글교사로서 젠탱글을 올바르게 알리는 게 내 사명”이라며 앞으로도 젠탱글을 알리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공인젠탱글교사로서 젠탱글을 올바르게 알리는 게 내 사명”이라며 앞으로도 젠탱글을 알리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이에 단순한 패턴을 반복해서 그립니다. 난생처음 그려본 사람도 순식간에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고요. 패턴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맑아지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도대체 뭐냐고요? 바로 젠탱글(Zentangle) 아트입니다. 젠탱글은 집중·몰입·명상을 뜻하는 젠 (Zen)과 복잡하게 엉킨 선·패턴을 뜻하는 탱글(Tangle)의 합성어예요. 반복되는 패턴을 그리며 명상 효과를 얻는 창조 활동이죠. 서울 강남구 아티젠 탱글링캠퍼스에서 만난 박현주 공인젠탱글교사(CZT·Certified Zentangle Teacher)는 젠탱글을 가리켜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드는 예술 활동”이라고 했어요. 캠퍼스를 가득 채운 젠탱글 작품을 둘러보던 황승민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궁금한 점을 늘어놓았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아티젠 탱글링캠퍼스를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박현주(왼쪽) 공인젠탱글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젠탱글을 그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아티젠 탱글링캠퍼스를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박현주(왼쪽) 공인젠탱글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젠탱글을 그리고 있다.

지용: 젠탱글의 유래가 궁금해요.
젠탱글은 2005년 미국에서 캘리그래퍼이자 식물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알린 마리아 토마스와 명상가로 활동하던 릭 로버츠 부부가 처음 만들었어요. 어느 주말 오후, 큰 글자의 배경에 패턴을 그려 넣던 마리아를 릭이 여러 번 불렀지만, 그는 한참 후에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죠. 마리아가 “아무 걱정 없이 온전히 그림에만 집중한 상태였다”고 하자 릭은 “당신은 지금 명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어요. 두 사람은 긴장한 채로 정밀한 문자를 그릴 때와 달리, 편안한 상태로 아름다운 패턴을 장식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다른 집중력이 발휘됐음을 깨달았죠. 이후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몇 단계로 나눠 가르치기로 결심했고, ‘젠탱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지용: 젠탱글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데, 어떤 원리인가요.
스트레스는 인간의 삶 곳곳에 존재하기에 완벽하게 피해갈 수는 없어요. 다만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완화해 삶의 원동력으로 바꿀 수는 있죠. 구조화된 패턴들을 그려 아름다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젠탱글 메소드도 그 방법의 하나입니다. 메소드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가는 동안 우리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게 돼요. 사람은 무언가를 창조할 때 경이로움·행복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히 마음을 치유할 수 있죠. 또, 그림에 집중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의 관점을 전환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
박 교사가 그린 탱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플럭스(Flux), 크레센트 문(Crescent Moon), 프렝땅(Printemps), 홀라보(Hollibaugh)를 활용해 젠탱글을 완성할 수 있다.

박 교사가 그린 탱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플럭스(Flux), 크레센트 문(Crescent Moon), 프렝땅(Printemps), 홀라보(Hollibaugh)를 활용해 젠탱글을 완성할 수 있다.

승민: 다른 미술 활동과 비교했을 때 젠탱글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배우기 쉽고 재미있다는 거예요. 5세 어린이부터 80세가 넘는 어르신도 뚝딱 해낼 정도죠. 도구가 간단해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고, 재료비도 저렴해요. 선천적 재능이나 오랜 훈련 기간이 필요하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철학이 있는 아트’라는 게 장점이죠. 젠탱글 메소드에는 ‘실수’가 없답니다. 대신 ‘예상치 않은 상황’ ‘새로운 기회’라고 부르죠. 학교·학원에서 미술을 배우면서 ‘이렇게 그려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하지만 젠탱글은 특정한 결과를 기대하고 시작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도, 오답도 없어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펜을 움직이든 여러분의 고유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일 뿐이거든요. 실제로 젠탱글 수업을 수강한 한 어르신은 “내 평생 ‘괜찮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은 건 처음이다”라고 하셨죠. 젠탱글을 꾸준히 그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승민: 젠탱글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요.
강의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젠탱글 배워서 어디에 쓰나요?’예요(웃음). 젠탱글은 그리는 과정에 중점을 둔 자기발견의 여정이자,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도구예요. 딱히 어디에 사용하지 않아도 그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발휘하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패턴과 그림이 쓰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활용 가능합니다. 옷·스카프 같은 패브릭, 도자기, 타일, 문구류를 포함한 모든 디자인 분야에 젠탱글이 들어갈 수 있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다이어리 꾸미기에도 젠탱글 메소드를 적용할 수 있죠.  
지용: 공인젠탱글교사로서 목표가 있다면요.
젠탱글을 창시한 릭과 마리아에게 직접 젠탱글 철학·교수 방법을 배우고, 젠탱글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되면 공인젠탱글교사로 활동할 수 있어요. 공인젠탱글교사가 된 후 전시·교육 활동 등 젠탱글을 알리는 일에 집중해왔죠. 아직도 일각에서는 젠탱글을 단순한 낙서 혹은 패턴을 나열해 그리는 패턴아트라고 잘못 알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젠탱글을 올바르게 알리는 교육 활동에 힘쓰고 싶어요.

단순한 무늬로만 보였던 젠탱글에 이토록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니 놀라웠죠. 박 선생님의 설명에 두 사람은 “빨리 젠탱글을 그려보고 싶다”며 열의를 보였어요. 면 소재의 질 좋은 종이(타일), 연필, 펜, 찰필만 있으면 젠탱글 그릴 준비 완료입니다. 우선 네 모서리에서 0.5~1㎝ 떨어진 위치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점을 찍어요. 점과 점을 선으로 이을 때는 “직선이 아니어도, 비뚤어져도 괜찮다”고 박 선생님이 조언했죠. 마지막으로 사각형 안에 알파벳 ‘A’ 모양 스트링을 그립니다.

“이제 얇은 펜으로 ‘플럭스(Flux)’라는 탱글(순서에 따라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만든 패턴)을 그려볼게요. ‘A’의 가로선을 따라 물방울 같기도, 잎사귀 같기도 한 모양을 그려줍니다. 앞서 말했듯 젠탱글엔 정답이 없으니까, 선생님을 똑같이 따라 하기보단 여러분만의 플럭스를 만들어 보세요. ‘A’ 모서리는 ‘크레센트 문(Crescent Moon)’으로 채울 거예요. 원하는 위치에 마치 반달 같은 반원 탱글을 그리고 좀 더 두꺼운 펜으로 안쪽을 까맣게 채웁니다. 여백은 반원을 따라 선을 반복해 그리며 채우는데, 선과 선이 만나는 부분은 이어질 수 있도록 해볼게요.”

타일에 연필로 자신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스트링을 표시한다. 얇은 펜으로 플럭스·크레센트 문·홀라보 등 다양한 탱글을 그려넣는다. 두꺼운 펜으로 빈 공간을 칠하고 곳곳에 음영을 넣어줘도 좋다. 타일이 완성되면 서명을 한다.

타일에 연필로 자신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하게 스트링을 표시한다. 얇은 펜으로 플럭스·크레센트 문·홀라보 등 다양한 탱글을 그려넣는다. 두꺼운 펜으로 빈 공간을 칠하고 곳곳에 음영을 넣어줘도 좋다. 타일이 완성되면 서명을 한다.

‘A’ 다리 부분을 채울 탱글은 ‘홀라보(Hollibaugh)’인데, 아무렇게 쌓인 나무토막이 모티브가 됐다고 해요. 2개의 평행선을 그어 막대를 만들고 굵기·모양 등을 달리하며 겹치지 않게 그립니다. 넓은 공간을 채우기 좋고 막대가 층층이 쌓인 것처럼 보여 입체감이 느껴지는 게 홀라보의 특징이에요. 빈 곳을 칠하면 한층 깊이감 있는 젠탱글을 그릴 수 있죠. 혹시 남은 공간이 있다면 ‘프렝땅(Printemps)’이라 불리는 달팽이 모양 탱글로 채워주세요. 마지막으로 연필과 찰필을 이용해 그윽한 음영을 넣어줄 차례입니다. 패턴의 모서리, 면과 면, 혹은 음영을 표시하고 싶은 부위를 연필로 살살 칠한 뒤 찰필을 눕혀 연필 선을 부드럽게 문지르면 되죠. 음영이 들어가 입체감이 살아난 서로의 그림을 보며 두 학생기자는 “내 것보다 훨씬 잘했다”고 칭찬했어요. 박 선생님이 “여러 번 강조했지만 젠탱글엔 ‘잘했다’ ‘못했다’는 개념이 없답니다. 두 사람 모두 멋진 타일을 만들어냈어요”라고 했죠.

황승민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직접 그린 젠탱글(위 두 작품)과 박현주 교사가 완성한 젠탱글(아래 두 작품). 같은 탱글을 활용해도 결과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게 젠탱글의 매력이다.

황승민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직접 그린 젠탱글(위 두 작품)과 박현주 교사가 완성한 젠탱글(아래 두 작품). 같은 탱글을 활용해도 결과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게 젠탱글의 매력이다.

“젠탱글을 하다 보면 패턴을 그리는 작업보다 ‘잘 그리려는 마음’ ‘그림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무언가를 계획하고 결과를 의식하게 되면 실수에 대한 부담이 생기고,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죠. 젠탱글을 잘 그릴 수 있는 비법은 역설적이게도 잘 그리려 애쓰지 않고 현재 그리는 패턴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한 번에 선 하나씩’ 이 단순한 과정이 창의력을 끌어내거든요.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과정을 즐기는 젠탱글, 우리 인생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젠탱글 메소드 8단계(The Eight Steps of the Zentangle Method)

1단계: 감사와 존중(Gratitude and Appreciation)
천천히 심호흡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느낍니다. 좋은 종이, 멋진 도구,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시간과 기회에 감사합니다.

2단계: 코너 점(Corner Dots)
타일(종이)의 모서리 연필 두께만큼 떨어진 곳에 연필로 가볍게 점을 찍습니다. 이제 타일은 더는 빈 종이가 아닙니다.

3단계: 테두리(Border)
직선 또는 곡선으로 점과 점을 연결해 테두리를 만듭니다. 선이 똑바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4단계: 스트링(String)
테두리 안에 선을 그려 스트링을 만듭니다. 스트링은 종이의 표면을 여러 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구획선으로, 직선·곡선 등 어떤 모양도 좋아요.

5단계: 탱글(Tangle)
테두리와 스트링 안에 펜으로 탱글을 그립니다. 모양은 신경 쓰지 마세요. 현재 그리고 있는 선에만 집중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

6단계: 음영(Shade)
연필로 명암을 추가해 탱글에 깊이와 원근감을 만들 수 있어요. 찰필로 흑연을 부드럽게 만들어 입체감이 드러나는 것을 즐기세요.

7단계: 이니셜과 서명(Initial and Sign)
타일은 당신이 만든 예술작품이기에 서명해야 합니다. 앞면에는 이니셜을 쓰고 뒷면에는 이름·날짜·감상 등을 적습니다.

8단계: 감사하기(Appreciate)
타일을 든 팔을 쭉 뻗어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면서 감상하세요. 당신이 창조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세요. 젠탱글은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냅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젠탱글을 배우기 전엔 마냥 복잡하고 어려워 보였어요. 하지만 직접 해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잡념이 사라졌고, 어느새 제 손엔 완성된 작품이 들려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젠탱글을 이루는 선·패턴에는 잘못된 것도 없고 지울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미술 시간에 잘못된 부분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곤 했는데, 젠탱글에서는 오히려 ‘실수’가 새로운 패턴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게 큰 위로로 다가왔죠.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늘 배운 패턴을 바탕으로 젠탱글을 다시 해봤어요. 기대 이상의 작품이 완성돼 기분도 좋고, 성취감까지 느꼈죠.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젠탱글을 하며 힐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승민(서울 대치중 2) 학생기자

처음에는 ‘젠탱글’이라는 단어가 매우 생소했어요. 취재 전 작품을 찾아보니 반복되는 무늬 덕에 일반 미술 작품보다 훨씬 독특해 보였고, 황홀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죠. 젠탱글의 매력은 바로 하나의 작품에도 특유의 철학이 담겼다는 거예요. 또, 작품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직접 젠탱글도 그려봤는데요. 평소 미술에 소질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젠탱글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창의력과 집중력만으로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현지용(서울 가곡초 6) 학생모델

글=박소윤 기자 park.soyoon@joongang.co.kr, 사진=지다영(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황승민(서울 대치중 2) 학생기자·현지용(서울 가곡초 6) 학생모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