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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응급실엔 있는 CCTV, 수술실엔 왜 없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4)

나는 의사다. 고백한다. 나는 한때 수술실 CCTV 설치를 반대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자격이 없다. 물론 변명은 있다.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아무 이유 없이 CCTV 설치를 반대했던 건 아니다.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그게 뭔고 하니….

수술실 CCTV와 곧잘 비교되는 게 어린이집이다. 어린이집 CCTV는 어떻게 사생활 침해 논란을 넘어섰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CCTV 설치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성인과 다르다.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피하거나 저항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폭력을 겪어도 제대로 된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고로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은밀한 범죄이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CCTV를 통한 감시만이 유일한 대안일 뿐.

나는 이를 역으로 생각했다. 만약 우리에게 CCTV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면, 다른 분야와의 비례의 원칙에서 수술실 CCTV는 반대하는 게 옳을 것이다. 유령수술에 대한 회복 불가능 수준의 법적 선고, 수술실 출입부 작성 및 지문인식 등의 방법으로 CCTV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수술장이란 본디 다양한 직종의 의료진이 함께 참여하는 장소다. 고로 미투를 강제적으로 끌어내는 게 가능하다. 양심고백을 포상하고 침묵하는 자를 성범죄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강력한 처벌을 지운다면? 굳이 CCTV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의사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무너진 의사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수술실 CCTV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pixabay]

의사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무너진 의사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수술실 CCTV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pixabay]

오해 마시라. 나이브했던 나 자신을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까.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인간은 지극히 악한 존재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억누르지 않으면 결국 악한 길로 빠진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많은 기회를 줬음에도 여전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은 환자·의사 관계에 신뢰를 부여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환자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너진 의사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수술실 CCTV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많은 의사가 나에게 분노할 것이다. 일제 시대 매국노를 보는 기분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의 양심을 지키겠노라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설령 다소의 인권 침해가 있더라도,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막는 게 내게는 백배 중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원망할 필요는 없다. 비단 의사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말했다시피 비례의 원칙에서)

수술실 CCTV를 최우선으로 통과시킨다면, 거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욱 고삐를 당겨야 한다.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불법 성매매가 만연한 곳, 유흥시설이 다음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그곳에 CCTV가 설치되면 그 효과는 가히 태풍급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성공한다면 우리는 낙원으로 한 발 더 내딛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근절하지 못했던 가정폭력까지 박멸하는 것이다. 각 가정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정폭력의 훌륭한 억제수단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나 처음이 어렵지, 일단 수레가 구르기 시작하면? 역사의 시곗바늘도 함께 굴러가기 마련이다. 수술실 CCTV가 그 첫 디딤돌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누군가는 걱정이 들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경험을 덧붙일까 한다. 응급실엔 어디나 CCTV가 있다. 나는 CCTV 아래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다. 물론 이것은 환자가 아니라 의료진을 지키기 위해 설치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아무튼 엎어치나 되치나. 내가 겪어보니 딱히 나쁜 게 없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걱정할만한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 당장 내 방에 설치한다고 해도 특별히 말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다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스케치했던 1984년의 세상은 2021년에야 비로소 가능해질지 모르겠다.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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