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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정권의 방패가 된 '운동권' 검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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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발표된 검찰 인사의 책임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지난 25일 발표된 검찰 인사의 책임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학생운동 이력을 가진 검사들의 약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한동훈 검사장 채널A 사건 무혐의 판단, 청와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기획 사정 의혹 수사 중) →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중) →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수사 중) →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임일수 전주지검 형사3부장(이상직 의원 관련 의혹 수사 중) →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지난 25일 법무부 인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 정권 관련 수사 책임자들입니다. 이정섭 부장은 이례적으로 9개월 만에 보직이 변경됐습니다. 변필건 부장이 맡은 인권보호관 자리는 수사권이 없는 보직입니다. 위에 쓰인 정권 관련 수사는 부장들이 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고소ㆍ고발에 따라 배당받은 사건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25일에 발표된 인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이 또 있습니다.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은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가족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진재선 서산지청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합니다. 서울 주요 지역의 선거 관련 사건을 총괄합니다. 검찰과장 자리는 옵티머스 사건을 담당해 온 주민철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이 맡습니다.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은 대전지검 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대전지검은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청입니다.

김태훈 과장과 진재선 지청장은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이었습니다. 주민철 부장은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이었습니다. 허정수 과장은 고려대 재학 중이었던 1988년 ‘5공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서울지검 점거 농성을 벌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 내 운동권 출신의 약진은 사실 이번 정권 내내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최고참급에는 별로 없어 그동안 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입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 이종근 서울서부지검장이 선두권에 있습니다. 남부지검은 라임 사건 등의 주요 금융범죄를 다루는 곳입니다. 지난 4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구자현 법무부 검찰국장, 예세민 대검 기획조정부장도 서울대 재학 때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25일 인사에서 법무부 대변인으로 발령 난 박현주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도 연세대 재학 시절에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종근 검사장의 부인인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성남지청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지청장 선호 1순위인 곳입니다. 운동권 출신인 이명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부인인 홍종희 인천지검 2차장도 지난 4일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서울고검 차장이 됐습니다.

'운동권 검사'의 약진이 과연 우연일까요? 실력에 따른 배치일까요? 현 정권 초기엔 전 정권에서 박해받은 검사들이 요직에 진출했습니다. 조국 사태 이후엔 호남 출신 검사들이 검찰의 핵심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전 총장 축출을 시도했을 때 대오에서 이탈했습니다.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제 '방탄검사단'의 앞 줄에 운동권 출신들이 섰습니다. 정권 방패 '버전 3.0'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학생운동의 최대 미덕은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정의감입니다. 주어진 수사를 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 전 총장 주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선배ㆍ동료 검사들이 자리에서 쫓겨나고 변방을 전전하는 오늘날의 검찰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과거에 대한 배신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검찰 인사의 중심에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있습니다. 그 역시 투옥 전력이 있는 운동권 출신입니다. 한림대 총학생회장이었습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불법 출금 사건의 핵심인 그를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냈는데 대검에서 계속 묵살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가 중앙일보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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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 수사팀, 해체인사 전날 ‘이광철 기소’ 재차 보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팀이 대규모 검찰 인사를 통한 사실상의 수사팀 해체 전날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기소 방침을 대검찰청에 재차 보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비롯한 현 정권 관련 사건들의 수사팀장들이 전면 교체되면서 계속 수사 가능 여부도 의문시된다.

27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24일 이 비서관에 대한 기소 방침을 대검에 보고했다. 수사팀은 지난달 12일 이미 이 비서관에 대한 기소 방침을 대검에 보고했지만, 대검은 한 달 이상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팀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던 검찰 중간 간부(고검 검사급) 인사 단행이 임박하자 재차 기소 의견을 올린 것이다. 재보고에는 지난 22일 9시간 가까이 진행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조사 내용 등이 추가로 담겼다.

정권 수사 새로 담당할 팀장들

정권 수사 새로 담당할 팀장들

이 비서관은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금 과정 전반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조 전 장관이 이 비서관에게 조율과 지휘 역할을 맡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중간간부 인사를 코앞에 둔 시점에 수사팀이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며 “대검의 결재를 촉구하는 의미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별다른 사유도 없이 이 비서관 기소를 미룰 이유가 없다. 정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뭉갤 생각이냐”며 검찰 지휘부를 비판했다.

재보고 직후 단행된 지난 25일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이 사건을 비롯해 현 정권 관련 사건을 수사해오던 수사팀은 모두 사실상 해체됐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의 경우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이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후임에 최명규(45)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장이 임명됐다. 최 부장은 경기 부천시 출신으로 부천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남부지검 부부장, 창원지검 전주지청 형사2부장 등을 역임했다.

‘청와대발(發) 기획사정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발령 났다. 후임자인 이선혁(53) 수원지검 형사1부장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광주 서석고,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청주지검 부장을 지냈고 ‘드루킹 특검’ 파견 경력도 있다.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을 맡을 대전지검 형사4부장에는 김영남(46) 부산지검 서부지청 부부장(국무조정실 파견)이 임명됐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고창고, 서울대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지검 부부장 등을 지냈다. 이 사건은 원래 대전지검 형사5부가 담당했지만, 검찰 직제개편으로 형사4부로 관할이 이관됐다. 기존 수사팀장이던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및 경찰의 봐주기 의혹’을 마무리할 중앙지검 형사5부장에는 박규형(46) 서울남부지검 형사7부장이 임명됐다. 대구 출신으로 대원외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부산지검 부부장 등을 거쳤다.

검찰 내에선 이들에 대해 “무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검사는 “수사를 못 한다는 평가를 받는 검사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검찰 간부는 “개개인의 성향과 별개로 수사팀장이 전면 교체되면서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후속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수민·정유진·김민중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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