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3김 체제보다 나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최재형 감사원장(오른쪽)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최재형 감사원장(오른쪽)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자꾸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가치는 중앙권력에 속했다. 권력 기반도, 안정성도, 야심을 만족시킬 대체수단도 없이 권력을 향해 경쟁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했다. 이 사회는 높이 솟은 원추형 소용돌이라는 특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검찰총장 이은 감사원장 정치행 #문재인 정부 비정상 현상의 하나 #과도한 권력의 사유화 탓 아닌가

주한 외교관 출신의 그레고리 헨더슨의 반세기 전 관찰이다(『소용돌이의 한국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우리 정치엔 ‘촌락과 왕권(village and throne)’만 있을 뿐 중간이 없다고 봤다. 얼마나 달라졌나 싶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윤석열)에 이어 감사원장(최재형)이 대선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목격하니 더 절절하다. 윤 전 총장이야 2년 가까이 갈등을 지켜봤다. 최 원장의 선택은 돌연하다. 그 자신이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을 들어 감사위원으로 반대했던 인물(김오수)이 감사위원 못지않게 중립성·독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직에 발탁되는 걸 보고 고뇌했다니 한 달 사이 변화다. 당시 반대 이유가 “정치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중립성 등 문제가 있는 듯) 비춰진다”였다는데 이젠 자신이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감사한 건 없다”지만 그의 감사원장 시절은 현미경 아래 놓일 것이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선 안 된다”(정치 컨설턴트 박성민)고들 말한다. 특정 분야에서 수완을 보였다고 곧바로 정치에서의 실력 발휘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자질과 기예, 연마와 단련이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도 안 되는 사람, 적지 않다. 운도 절대적이다. 그런데도 “그야말로 딸깍발이 같은 법조인”(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최 원장마저도 난장(亂場)으로 빨려 들어갔다. 새삼 소용돌이의 위력에 놀란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고 했다던데 동의한다. 정상이어서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들만 나무라는 건 온당치 않다.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비정상의 일상화(日常化)’란 현상의 일부여서다. 근저엔 과도한 권력의 사유화 문제가 있겠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론 “공동체의 이익을 받드는 공직자의 선공후사”를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뜻한 바는 ‘공동체=자기 진영’일 때가 많아서다. 선공후사는 선사후공(先私後公)이곤 했다. 국제공용어론 ‘내로남불’이겠다.

근래 내각과 검찰만 봐도 완연하다. 역대 정권에선 이 무렵이면 선거 중립 내각 시늉이라도 냈다. 지금은 여당 출신 국무총리(등판 기회 온다면 마다치 않는다)와 친문 핵심인 행정안전부 장관(전해철)과 법무부 장관(박범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황희)이 있다. 선거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처들이다.

DJ(김대중) 대통령 때 논란의 김정길 법무장관과 비교해 봐도 좋겠다. 당시 여당의 이해찬 의원이 “서울지검 박○○ 부장검사가 올해 3월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면제 의혹 수사를 결심했다고 하더라. 그쪽에서 인지 수사하기 어려우니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먼저 문제를 제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이후 검찰 인사에서 수사 지휘부가 교체됐다. 정작 박 부장검사만 유임되자, 야권에선 김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고 석 달 뒤 교체됐다.

요즘은 차원이 다르다. 피의자 장관이 피의자 검사들을 승진시켰는데 청와대의 담당 비서관도 피의자다. 장삼이사들도 이름을 꿰게 된 친정권 검사들은 서울로 영전했고 윤 전 총장 사건을 쥐고 있다. 이에 비해 현 정권 수사팀은 전국 각지를 떠돈다. 이러고도 “조화와 균형 있게 공정하게 했다”고 말한다.

상식선이란 게 있다고 믿었다. 이른바 민주주의의 가드레일 말이다. 약했다. 한 학자는 “민주화 34년을 돌아보면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체제엔 괜찮았던 면이 있었는데, 이후 나빠졌고 지금은 심하다”고 토로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