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발견 어려운 난치암 췌장암은 독한 암으로 유명하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치료가 어렵다는 폐암·간암도 3명 중 한 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 하지만 국내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2.2%에 불과하다. 월드컵 영웅 유상철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을 피하지 못했다. 췌장암은 자각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해부학적으로 복부 깊숙이 있어 발견이 어렵다. 암 전이도 빨라 치료도 까다롭다. 췌장암 치료 성적을 끌어올리는 확실한 방법은 조기 진단이다. 적극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췌장암 의심 증상과 위험 요인을 알아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암이다. 국내 암 발생률 8위이지만 사망은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한 해 7000여 명 이상 새롭게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췌장암 환자 10명 중 9명은 사망한다. 국내 10대 암 중에서 예후가 가장 나쁘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공략이 어렵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박주경 교수는 “췌장은 간·위·소장·십이지장 등 여러 장기로 둘러싸여 있어 각종 검사에도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췌장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수술이다. 단, 암세포가 주변 혈관을 침습하지 않고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 수술이 가능한 1기 췌장암 완치율은 50%로 뛴다. 최근엔 항암 치료로 암세포의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췌장암 초기에 발견해야 한다. 췌장암 의심 증상에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췌장암 환자의 75~80%는 암이 광범위하게 퍼져 수술이 불가능한 3~4기에 뒤늦게 진단받는다.
1기 췌장암 수술 완치율 50%
췌장암은 암이 생긴 위치와 주변 장기 전이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 우선 소화불량이다. 췌장은 음식을 소화하는 효소를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국립암센터 한성식 간담도췌장암센터장은 “췌장암 초기에는 췌장의 소화 효소 분비 능력이 떨어져 속이 더부룩하고 식욕이 없다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소화가 잘 안 되면 식욕이 줄고 영양소 흡수율이 떨어져 체중이 빠진다.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 3~6개월 이내 체중이 10% 이상 감소하거나 소화불량, 상복부 불쾌감 등 증상이 몇 달간 지속하면 췌장 문제를 의심한다. 배탈·소화불량 등 단순 위장 증상은 길어도 일주일이면 호전된다.
복통도 췌장암의 주요 증상이다. 암이 췌장 머리 쪽에 있으면 명치 부위가, 꼬리 쪽에 있으면 왼쪽 윗배가 아프다. 초기에는 견딜 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진다. 복부 깊은 곳에서 등쪽으로 퍼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한다. 피부나 눈 흰자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도 나타난다. 췌장 머리 부위에 발생한 암이 간에서 담즙이 내려오는 길을 막아 생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소를 알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췌장암의 확실한 위험 요인은 흡연이다. 한성식 센터장은 “흡연자의 췌장암 발생 위험도는 비흡연자의 2~5배 높다”고 말했다. 흡연 기간, 흡연량 등에 비례해 췌장암 위험이 증가한다.
잦은 음주도 위험하다. 알코올 자체는 췌장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췌장암 위험을 13~14배 높이는 만성 췌장염을 유발한다. 술이 키우는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의 씨앗이다. 술을 자주 마실수록 췌장에 반복적으로 염증을 유발하다 만성 췌장염으로 진행한다.
당뇨병 관리도 필요하다. 박주경 교수는 “당뇨병은 췌장암의 결과이면서 원인”이라고 말했다. 암으로 혈당 조절에 핵심적인 췌장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면서 당뇨병이 발생·악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당뇨병으로 뚜렷한 전조 증상이 없는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단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환자 50~60%는 당뇨병 동반
실제 췌장암 환자의 50~60%는 당뇨병을 동반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2년 내 당뇨병을 진단받았다는 연구도 있다. 당뇨병을 20년 이상 앓았는데 잘 관리되던 혈당이 치솟으면서 갑자기 나빠지거나, 가족력이 없는데 65세 이상 고령이고, 비만하지 않고, 체중이 2㎏ 이상 빠지면서 당뇨병으로 처음 진단받았다면 췌장암 선별검사를 고려한다.
췌장암 환자의 10%는 유전적 요인이 존재한다. 직계가족 중 50세 이전에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있거나 나이와 상관없이 췌장암 환자가 2명 이상이라면 췌장암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집안에 가족성 유방암·난소암·대장암이 있어도 췌장암 발병 위험이 크다.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가족 중 췌장암 발병 연령보다 10년 일찍 복부 초음파, 자기공명담췌관조영술 등으로 췌장 정밀검사를 받는다.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