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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위에서 쏟아진다, 음악계 달구는 ‘공간음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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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독일에서 3D 녹음을 준비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최진 감독. [사진 셈프레 라 뮤지카]

독일에서 3D 녹음을 준비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최진 감독. [사진 셈프레 라 뮤지카]

“음향의 가장 큰 진보.” 이달 7일(현지시간) 애플 뮤직의 부사장인 올리버 슈셔가 발표한 자료 중 일부다. 애플 뮤직은 이날부터 ‘공간(spatial) 음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가수 제이 발빈, 아리아나 그란데부터 LA 필하모닉의 구스타보 두다멜의 음원까지 총 7500만 곡을 ‘공간 음향’으로 서비스한다는 발표였다. 미국의 스타 지휘자인 두다멜은 같은 자료에서 “기술의 발전이 우리 귀와 마음, 영혼에 더 밀착된 경험을 선사한다”고 표현했다.

영화관서 이미 일반화한 시스템 #소리가 듣는 사람을 전방위 포위 #애플·유니버설뮤직 음원 제작 나서 #3D 특화된 청취장비 보급이 우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음원 제작사인 음반사,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공간 음향’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간 음향’은 뭘까. 같은 뜻의 용어는 다양하다. ‘3D 음향’ 또는 ‘입체’ ‘몰입형’음향으로도 불린다. 소리가 듣는 사람을 모든 방향에서 둘러싼다는 뜻이다.

음악 청취는 한 쪽으로 듣던 모노로 시작해 양쪽의 스테레오, 셋 이상의 스피커로 청취자의 등 뒤까지 둘러싼 서라운드까지 발전했다. 공간 음향은 여기에 ‘층위’ 개념이 더해진다. 앞뒤에서 들리는 소리뿐 아니라 위아래의 소리까지 다르게 잡아내, 들을 때도 그대로 구현하면 소리가 하나의 공간을 구성한다는 원리다.

공간 음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애플에 이어 세계 최대 레이블인 유니버설 뮤직도 지속적인 공간 음향 음원 제작을 공표했다. 또 워너 뮤직은 클래식 분야에서만 올해 말까지 70종의 공간 음원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마존, 넷플릭스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간 음향을 추가했다.

공간 음향은 기존 소리와 어떻게 다를까. “7~8년 전부터 공간 음향으로 녹음해왔다”는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의 스튜디오에서 시험해봤다. 국내외 음원 녹음의 음향을 담당하는 최 감독이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을 재생했다. “이게 스테레오 사운드고요.” 베토벤 마지막 교향곡의 웅장한 음향이 울렸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짱짱하게 내는 소리였다.

“이건 3D 음향입니다.” 최 감독이 기계를 조작하는 순간 소리가 부풀어 오르듯 튀어나왔다. 마치 압축돼 있던 공간이 팽창하는 듯했다. “악기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해상도라 마치 연주장에 와 있는 듯한 공간감이 만들어지죠.” 인간이 소리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와 녹음 기술이 발전해 소리를 정확한 좌표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된 결과가 3D 음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소리 정보를 최대한 많이 넣었다고 보면 된다”며 “스테레오 이후 모노 시대로 돌아갈 수 없었듯이, 공간 음향은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의 혁명”이라고 했다.

한국 연주자 중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지난해 5월 작곡가 슈만의 작품을 공간 음향으로 음원 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도 공간 음향으로 나왔다. 8월 나오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신보도 공간 음향으로 제공된다. 워너뮤직 코리아의 이상민 이사는 “한국에서만 매달 10종류씩 입체 음향을 제작할 예정”이라며 “음질에 민감한 클래식 음원이 특히 입체 음향의 효과를 실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D 녹음으로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이진상은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연주를 바로 듣는 것처럼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간 음향은 영화관에선 일반화한 시스템이다. 앞뒤, 좌우, 위에 음향 장치를 설치해서다. 최근 공간 음향의 이슈는 이런 사운드를 3D에 특화된 스피커, 유무선 이어폰, 헤드폰에서도 개별 청취자가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장벽은 장비다. 녹음, 믹싱을 공간 음향으로 해도 듣는 사람의 장비에 따라 입체감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뮤직이 시작한 서비스 역시 구형 이어폰에선 구현되지 않는다. 음향 전문 브랜드로 공간 음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업체 돌비의 사이트에서 직접 들어봤을 때, 특정한 장비 없이도 약간의 차이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 스튜디오에서 들었을 때만큼 완전히 달라지진 않는다.

사운드 엔지니어 황병준은 “고성능의 스피커보다는 휴대전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모두가 입체 음향을 선택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며 “시행착오의 기간과 과도기를 거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음악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공간 음향에 공감대를 가지고, 기기 또한 적정한 가격이 일반에 보급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뜻이다.

60년대 록밴드 비틀스는 스테레오가 나온 후에도 모노 녹음을 고집해 양쪽 귀에서 같은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지금도 일부 음악 애호가는 모노 사운드를 듣기 위해 LP를 구매한다. ‘소리의 공간’을 만드는 공간 음향은 21세기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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