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못막았다, 같은 업체 똑같은 참사

중앙일보

입력 2021.06.28 00:02

업데이트 2021.06.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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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업안전 패러다임 바꾸자 

올해 3월 26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60대 조종원이 숨졌다. 두 사고(아래 사진)를 낸 업체는 사실상 같은 회사였다. 가족을 대표로 앉힌, 이름만 바꾼 회사를 세워 다시 건설현장에 나타났다. 등록을 받아준 안전 불감 행정이 빚은 참사다. [연합뉴스]

올해 3월 26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60대 조종원이 숨졌다. 두 사고(아래 사진)를 낸 업체는 사실상 같은 회사였다. 가족을 대표로 앉힌, 이름만 바꾼 회사를 세워 다시 건설현장에 나타났다. 등록을 받아준 안전 불감 행정이 빚은 참사다. [연합뉴스]

올해 3월 26일 오후 3시8분쯤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공공택지지구 내 지식산업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60대 조종원이 다쳐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산재 사고 내 폐업된 회사 이름 변경
아내를 대표 앉혀 재설립…또 사고
지자체, 업체 허가심사 때 못 걸러내
“기업 처벌론 한계, 현장감독 강화를”

중대재해법 만들어도 행정 등 구멍
올해 4월까지 산재로 309명 숨져
사망사고 건수 작년 동기대비 늘어

공사 현장에는 타워크레인이 3대 있었다. 두 대는 A특수건설기계업체에서 설치했다. 나머지 한 대는 A사의 설치 일정이 안 맞아 J기업에 맡겼다. 사고는 마지막에 설치하던 3호기에서 일어났다.

조사 결과 16개의 볼트를 설치해야 하지만 4개만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한 볼트 끝의 너트가 풀리면서 맥없이 무너졌다. 사고 조사를 한 산업안전공단 측은 “건물이 올라가면 그에 맞춰 단을 높이게 되는데, 이때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게 된다. 이 작업을 편하게 하려고 볼트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작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비용을 절감하면서 시행하려다 벌어진 참사라는 얘기다. 실제로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의 설치 계약 기간은 3월 24~26일까지 사흘이었고, 계약액은 하루 400만원이었다.

2017년 12월 9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타워크레인이 붕괴해 3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김경록 기자

2017년 12월 9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타워크레인이 붕괴해 3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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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 업체는 유사한 사고를 내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갔던 전력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3년 전인 2017년 12월 9일이다. 경기도 용인시 고매농수산물 종합유통센터 공사현장에서 단을 높이던 타워크레인이 부러지면서 3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이번에 발생한 의정부 사고의 판박이다. 당시 회사의 이름은 M타워였다. 대표 김모씨는 처벌되고, 회사는 폐업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안전대책’을 발표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M타워가 소리소문없이 다시 나타났다. 대형 산재 사망사고를 낸 지 한 달 10일 만인 2018년 1월 18일이다. 이름만 바꾼 또 다른 회사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부인이 앉고, 김씨는 설치팀장이 됐다. 이번에 60대 조종원 사망사고를 낸 J기업이다. 사고 조사보고서에는 “김씨가 실질적인 대표”라고 적시돼 있다.

어떻게 이런 업체가 회사명과 대표 돌려막기를 하면서 버젓이 건설현장에서 활보할 수 있었을까. 안전사고에 둔감한 행정 탓이다.

“위장업체 허가한 행정기관, 안전사고 땐 책임 물어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신청서를 내고 적격심사를 받아 등록만 하면 사업체를 꾸릴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놓고 행정체계는 법 제정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예전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회사에 문제가 생겨 등록 말소되고 면허가 사라지면 대표자는 신규 등록을 할 수 없다”며 “하지만 가족의 누군가를 내세워서 회사 이름을 바꿔 다시 신규 등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 도외시 한 행정 파고드는 그놈 목소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안전 도외시 한 행정 파고드는 그놈 목소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 관계자는 “지자체가 가족관계를 다 점검하거나 지인 등을 색출하기 어렵다 보니 중소업체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했다. 이런 행정 체계에선 중대 안전사고를 낸 회사를 산업 현장에서 퇴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토교통부가 타워크레인 사고와 관련된 안전대책을 여러 차례 내봐야 대국민 제스처일 뿐 행정상으로는 무용지물이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다.

김동춘 동국대 산업안전공학 교수는 “한국의 전산 체계로 가족을 동원한 위장 업체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안전 우선의 행정체계로 대수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사고가 나면 행정기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을 주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기업이나 허가를 내준 뒤 손을 놓은 행정기관이나 뭐가 다른가. 따지고 보면 행정기관도 원청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기업 책임만 들먹이는 특별감독, 안전주간 선포 등 책임 회피성 정책이나 대책만 난무할 뿐 행정기관이 책임졌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광주광역시의 철거 사고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실제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보여주기식, 관행적 조치만 하는 이런 ‘쇼윈도 행정’ 때문에 산재 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1월 8일)된 뒤 폭증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현재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309명이다. 수치상으로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명 감소했다.

그러나 통계의 속살을 들춰보면 정반대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로 38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산업 현장의 단일 사고로 이처럼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 고려해 계산하면 올해 산업 현장의 사망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건 넘게 늘어난 셈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감독하는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뒤 되레 산업 안전 사각지대가 확산하고 있다. 현장을 놓치고 있어서다. 정부든, 기업이든 보고용 페이퍼만 잔뜩 쌓고 있다.” 서류 작성과 보고서를 만드느라 현장 관리를 소홀히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한은화·강기헌 기자
울산=백경서 기자, 여수=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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