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긍정 에너지가 부글부글”…요리남 4인4색 요리론

중앙일보

입력 2021.06.27 09:00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4)

2년 전쯤부터 진심으로 요리를 좋아한다며 연희동 요리교실을 찾는 남성이 늘어났다. 이전까지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아내에게 ‘이제부터 집에서 밥 해줘야지. 요리교실에서 기본이라도 배우는 게 어때?’라며 강제적으로 다니게 된 남성, 와인을 너무 좋아해 요리의 세계에까지 도전하는 대학교수 등 오륙십 대 남성 몇 명이 요리교실에 다니는 정도였다. 그러나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가정교육이 당연했던 시대에 십 대, 이십 대 시절을 보내온 한국의 중장년층 남성은 ‘키친’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요리교실이라는 세계에 녹아들지 못한 걸까. 아니면 같은 세대의 중년 여성이나 딸의 나이와 비슷한 세대의 여성에게 둘러싸여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다는 행위가 고통으로 느껴진 걸까. 한 학기가 끝나면 한 사람 두 사람 자연스레 사라져갔다.

3년 전 개강한 남성으로만 구성된 요리 수업에는 어째서인지 그런 오육십 대 남성만 모였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일반 저녁 수업과 주말 수업에 삼사십 대 남성들이 들어왔다. ‘요리교실 다니는 여성을 노리고 온 거 아냐’ 아주 조금 의심하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찾아오는 남성들은 누구나 요리와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여성들 위주의 요리교실에 찾아오는 남성의 공통점은 묵묵히 집중해 손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집중하고 있는 건지 신기했다. [사진 pxhere]

여성들 위주의 요리교실에 찾아오는 남성의 공통점은 묵묵히 집중해 손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집중하고 있는 건지 신기했다. [사진 pxhere]

“와, 제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요?”
“네, 선생님. 엄청 보고 싶었어요!”

도쿄에서 학생 생활을 경험한 제프의 일본어 악센트는 나무랄 데 없지만, 내 한국어가 그렇듯이 스스로 서툰 일본어라고 마음을 그대로 내비친다. 쓸데없는, 돌려 말하는 표현을 못 하는 만큼 자신의 기분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는 제프와 나누는 일본어 잡담은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다.

며칠 전 연희동에 찾아온 제프와는 2년 만에 재회했다. 변함없는 스킨헤드에 10㎞의 조깅은 생활의 일부, 주말에는 취미인 트레일 러닝으로 서울의 산을 이곳저곳 뛰어다닌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편이 주최한 위스키 강좌에 참석한 제프가 가방에서 차례차례 명함을 꺼내면서 남편에게 설명했던 직함이 여섯 개 있었다. 응? 사기꾼 같잖아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전부 제대로 해내고 있는 비즈니스. 그의 에너지에 압도될 뿐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프라고 합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일본어로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오랜 기간 다녔던 소영의 소개로 찾아온 제프는 몇 명의 친구와 연희동 요리교실에서 즐겁게, 하지만 진지하게 요리를 배웠다. 제프뿐만 아니라 홀로 요리교실에 찾아오는 남성의 공통점은 묵묵히 집중해 손을 움직인다는 점. 늘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재료 밑손질에 전념한다. 설거지거리가 나오면 착착 씻어 정리한다.

소영이 요리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소영이 꾸린 멤버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소영의 무리에서 일어난 다툼에 휘말렸고 결국 그 요리 수업은 해산되어 남편과도 나와도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5월 연휴에 “우리 집에서 바비큐 할 건데, 안 올래?” 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어봤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제프와 오랜만에 만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요리 수업을 듣는 제프에게 왜 요리를 배우느냐 물었더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근거린단다. 긍정적 사고의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요리가 그중 하나라고 했다. [사진 pixabay]

요리 수업을 듣는 제프에게 왜 요리를 배우느냐 물었더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근거린단다. 긍정적 사고의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요리가 그중 하나라고 했다. [사진 pixabay]

연희동 마당의 산수국이 예년보다 빨리 피기 시작한 5월 초 저녁, 요리 수업에 다니던 때처럼 제프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찾아왔다. 일층 아틀리에의 주방에 들어서자, 마치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인 양 익숙한 손놀림으로 바비큐 밑손질을 도와줬다. 꽤 진중한 표정의 제프에게 이것저것 요리 순서를 알려준 것뿐으로, 쌓인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당에서 남편이 그릴에 불을 피우고 있을 때, 큰 연예기획사에 근무하는 우지가 찾아왔다. 언젠가 음악과 요리의 콜라보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며 요리 스타일링을 공부하고 있는 우지에게 음향설계사 직함도 갖고 있는 제프를 소개할 심산이었다.

요리 교실을 할 때는 긴장 상태인 나도, 마음 편한 친구들과 바비큐를 할 때면 긴장이 풀린다. 그날 샐러드나 바비큐에 곁들일 채소, 고기 요리에 필요한 소스 준비까지 제프가 거의 혼자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레시피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제프에게 입으로 만드는 법을 설명하면서 마당과 부엌을 오갈 뿐이었다. 그리고 넷이 샴페인을 따서 건배. 특별한 식재료나 요리가 없어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곧이어 거나하게 취기가 돈 나는 와인 잔을 기울이면서 제프에게 물어봤다.

“있잖아. 왜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원래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이라 다양한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정말 두근거려요. 긍정적 사고의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해야 하나. 요리는 그중 하나일지도 몰라요.”

제프에게 있어 요리란 늘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사명 같은 것으로, 그 과정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리를 만드는 동안에는 ‘이거면 됐나’, ‘소금은 더 넣을까’, ‘아, 이렇게 자르는 게 아닌데’, ‘더 센 불에 삶을까’, ‘이 요리는 무 밑동으로 해야 더 맛있을지도 몰라’하며 열심히 몸도 움직이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활력이 용솟음치는 듯하다. 아, 나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로서의 요리든 가족에게 차려주는 밥을 만들 때든 그 시간이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더라도, 반대로 몇 시간이나 걸리더라도 나에게 그 시간은 하나의 사명을 수행하는 동시에 무척 충실한 시간이다.

제프가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는 많은 요리남이 원하듯 ‘남자답고 겉모양은 별로일지 몰라도 누구나 맛있게 느끼는’ 요리. 하지만 실제로 집에서는 가장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만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 다음 질문! 집에서 여기서 배운 레시피로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

“흐음. 제가 준비한 재료로 만들면 연희동에서 만들 때와 얼마나 맛이 달라질까, 선생님 레시피로 만든 제 요리를 먹어줄 사람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상상하면서, 또 어떤 요리를 같이 내면 좋을까 생각해요. 뭐, 어쨌든 맛없지 않도록, 그것만 바라면서 만들죠.”

“마지막으로, 제프에게 요리란 뭐야?”

“오케스트라예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음향설계사란 직함을 지닌 그다웠다.

“요리는 관현악, 타악기, 현악기 등이 조화를 이뤄 소리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리에는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식재료, 먹는 사람, 조리 도구, 환경 등 필요한 요소가 각각의 위치에서 입장을 나눠 역할을 맡으면, 그때그때 목적에 맞는 조화로운 요리가 탄생하잖아요. 아, 맞다. 요소란 재료의 밑손질이나 마지막에 그릇에 담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음악과 같다는 뜻입니다.”

요리에 따라 들리는 음악이 다르다고, 제프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멋진 요리론이다. 요리를 가르친다고 하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직업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양식 중 하나가 되어버린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제프처럼 훌륭한 요리론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요리는 소리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음악과 같다는 뜻이다. [사진 pixabay]

요리는 소리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음악과 같다는 뜻이다. [사진 pixabay]

제프를 비롯해 구르메 레브쿠헨에 찾아오는 요리남은 삼십 대부터 사십 대 후반 남성이 많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부모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가 최근 이십 년간의 미국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서울에 돌아온 장원은 요리가 인간으로서 살아온 증거를 남기는 초상화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과 한국의 틈새에서 살아온 재원의 생각이 담긴 그다운 요리가, 어떤 초상화가 되어 식탁에 오를지 궁금하다.

제프처럼 일본어가 유창한 경종은 구르메 레브쿠헨에 다닌 최초의 남성이 아닌가 싶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대형 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의 새싹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인 요리교실에 오면 이대로 광고업계에 있어야 할지, 더 재미있는 일이 있는 건 아닐지 양파를 다지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요리교실이 일상생활의 쉼표이자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말해줬던 경종과는 이래저래 십 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다. 경종과 얇고 긴 인연을 이어가는 사이 그는 결혼도 했고, 가족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이는 데 행복을 찾았다. 물론 아트디렉터로서도 대활약 중인 경종이 언젠가 직접 만든 요리를 선보일 날을 기대하고 있다.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이십 대에 패션 관련 일로 성공을 거둔 석환은 삼십 대가 되고 미대에 진학했다. 멀리 돌아왔지만, ‘요리와 예술은 공통되니까’라며 삼십 대 후반이 되자 요리사의 길을 택했다. 요리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요리교실도 다닐 때, 요리도 미술과 같이 머릿속에서 그린 무언가를 구현할 수 있는 쾌감을 얻을 수 있고, 미각이 가미되어 더욱 불꽃이 튄다며 흥분하면서 말하던 석환. 현재 자기 가게를 열기 위해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요리를 잘하고 싶어서’라며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요리 수업에 다니고 있는 창현은 혼자 먹어도, 가족과 함께 먹어도 늘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말한다. 요리교실에서 배운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맛본 아내가 “이 맛, 정말로 이거면 돼?”라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평가하자, 다음에는 더욱 맛있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창현에게 요리는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 ‘이 요리가 맛있으면 좋을 텐데’, ‘맛있다고 해줄까’ 같은 기대. 요리는 창현에게 다망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소소한 기대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리남이여. 나는 이대로 요리를 가르치면 되는 걸까? 요리남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 심원한 요리 철학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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