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밝혀줘" 후 1년…故최숙현 폭행 증언 동료들 소송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7 06:00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가 지난 1월 29일 오전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경북 경주시청 직장운동부 김규봉 전 감독과 장윤정 전 주장, 김도환 전 선수에 대한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뉴스1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가 지난 1월 29일 오전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경북 경주시청 직장운동부 김규봉 전 감독과 장윤정 전 주장, 김도환 전 선수에 대한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숙현이가 살아있을 때 수사기관에 고소도 하고 체육기관에 호소도 해봤지만 다들 관심이 없었어요. 숙현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세상이 그래도 조금은 바뀐 것 같네요.”

지난해 6월 26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경북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고(故) 최숙현 선수 아버지 최영희(57)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선수는 1년 전 가족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경북 경산시 경북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최 선수는 2017년과 2019년 경주시청 직장운동부에서 활동했다. 최 선수는 그곳에서 감독과 팀닥터, 일부 선배들로부터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괴롭힘 등을 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영희씨는 “정신없이 보낸 1년이었다. 숙현이가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숙현이를 잊지 않아 고마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최숙현 선수 가족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최숙현 선수 가족

최 선수를 잊지 않은 사람들은 최 선수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라이딩 행사도 열었다. 기일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15인의 철인들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추모 라이딩에 나섰다. 각자 유니폼에 국화 한 송이를 꽂은 이들은 반포한강공원에서 출발해 경기도 하남 덕풍교를 찍고 돌아오는 54㎞ 코스를 자전거로 달리며 최 선수를 추모했다.

최영희씨는 “숙현이가 세상을 뜬 직후에도 그분들이 라이딩을 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1주기에도 숙현이를 잊지 않고 추모행사를 열어줘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스포츠 폭력이나 인권 유린 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일인 26일 최 선수 가족들은 최 선수가 안치된 경북 성주군 한 추모공원을 찾았다. 이날 오전 가족들이 다니는 작은 사찰에서 추도법회를 마친 뒤였다. 추모공원에는 최 선수 가족뿐 아니라 김정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대한철인3종협회 회원 등 최 선수를 기억하는 체육계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대전시청 철인 3종 정지은 선수는 추모사에서 "많이 보고 싶은 동생, 하늘나라에서는 고통 없이 웃으며 잘살고 있겠지. 먼 훗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연합뉴스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연합뉴스

최 선수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이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대구지법은 1심에서 김규봉(42) 전 감독에 징역 7년, 운동처방사 안주현(46)씨에게 징역 8년, 장윤정(32) 전 주장에 징역 4년, 김도환(25) 전 선수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이 중 유사강간, 강제추행, 사기, 폭행, 의료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안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다음 달 15일 열린다.

인권침해 재발 방지와 표준 근로계약서 제정 등을 담은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도 만들어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경주시청에서 함께 뛰던 김모(32) 선수가 팀 내 폭행을 증언한 최 선수의 동료 2명에게 4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3년 전 사이클 훈련 때 둘의 과실로 상처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보복성 소송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故) 최숙현 선수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이 지난해 7월 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대구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최숙현 선수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이 지난해 7월 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대구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최영희씨는 “마음이 무겁다. 어떻게 보면 본인이 숙현이에게 가해한 인물 중 하나인데 자기가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최영희씨의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최 선수가 싸이클을 타고 달리는 사진이다. 최씨는 “언론과 정부기관이 노력해서 숙현이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포츠 폭력과 인권 유린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숙현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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