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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통화에도 못구한 34㎏ 시신…5년간 사라진 성인 3700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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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감금 학대 당해 34kg 시신으로 발견된 A씨(21)는 사망 9일 전에도 경찰과 통화를 했다. 74일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가족들이 가출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하고 가혹행위로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22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하고 가혹행위로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22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경찰에 따르면 경찰관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A씨는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 이후 경찰은 전화를 끊은 뒤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물었다. 연락이 되는 이상 특이점이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경찰은 이후 6차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지만,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못했다.

가출신고 2회, 7차례 통화했는데…

A씨가 사망하기 전 가출신고 2회, 경찰과 7차례의 통화가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이 A씨를 찾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경찰관이 전화를 걸 때마다 A씨는 본인이 ‘(가해자) 두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 괜찮다’는 취지로 말했다. 가해자인 친구 2명도 경찰에게 “A씨의 위치를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가해자들은 A씨와 함께 지내고 있었고 ‘괜찮다고 말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경찰 관계자는 “성인이 실종된 경우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치 추적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에 따르면 위치 추적 등 적극적인 실종 수사를 벌일 수 있는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과 치매환자 등이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성인은 ‘가출인’으로 등록되며 실종아동법에 명시된 추적 수사를 할 법적 근거가 없게 된다.

성인 실종 한해 7만 5000명

경찰청에 따르면 A씨처럼 실종 신고가 접수되는 성인(가출인)은 2019년 기준 한해 7만 5000명이다. 이중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1436명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가족이 찾지 못한 성인 가출인은 3743명이었다.

“범죄 의심 있다면 적극 수사해야”

전문가들은 “돌아오지 못한 가출인 중 일부가 A씨처럼 범죄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씨는 “성인 실종에도 영장 신청, 경찰 출석 요구 등 경찰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사건처럼 범죄 정황을 경찰이 파악할 수 있었다면, 한 번 더 가출인을 찾아가 확인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강제수사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실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라지는 경우 국가기관이 강제로 그를 찾는 것은 기본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며 “범죄혐의점이 뚜렷한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도 “어떤 때 수사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기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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