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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이혼자녀 고민 들여다본 이 영화

중앙일보

입력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좋아한다고 꼭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꼭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이혼을 앞둔 부모의 알쏭달쏭한 말 뒤엔 결국 이런 질문이 숨어있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24일 개봉하는 영화 ‘흩어진 밤’은 부모가 이혼을 결심한 후 원치 않은 선택을 떠안게 된 열 살 수민(문승아)의 시선을 통해 이혼 상황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민을 상영시간 81분에 섬세하고도 담대하게 그려낸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김보라 감독의 ‘벌새’,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등 최근 아이의 눈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주목받은 여성 감독 영화의 궤를 잇는다.

24일 개봉 '흩어진 밤'로 장편 데뷔 #공동 연출 맡은 이지형·김솔 감독

가족, 태어나 처음 만나는 선택 불가 세계 

장편 데뷔작 '흩어진 밤'을 공동 연출한 (왼쪽부터) 이지형, 김솔 감독. [사진 씨네소파]

장편 데뷔작 '흩어진 밤'을 공동 연출한 (왼쪽부터) 이지형, 김솔 감독. [사진 씨네소파]

‘흩어진 밤’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출신 이지형(33) 감독이 직접 쓴 각본으로 학교 제작지원에 당선돼, 동기인 김솔(29) 감독과 공동 연출한 장편 데뷔작이다. 2년 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해 한국경쟁 대상과 주연 문승아(12)의 역대 최연소 배우상 등 2관왕을 수상했다. 당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포착해 탄탄한 구성과 연출로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고 호평받았다. “가족은 한 사람이 태어나 첫 번째로 만나고, 선택할 수 없는 한 세계”라며 뭉친 두 감독을 17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이지형 감독은 이혼 설정을 빼면 극 중 수민이 자신과 닮은꼴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첫 영화다 보니 제가 아는 감정을 쓰고 싶어서 가족얘기로 출발했어요. 처음엔 성인 주인공이었는데 우리 가족을 복기하다보니 제가 수민 나이 때 가족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게 이해 안 갔던 게 떠올랐어요. 사람 사이 거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초등학교 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막내다 보니 발언권이 상실되기 좋은 위치였고 뭔가 불안해도 잘 표현 못하고 관찰만 하게 됐는데 실제로도 네 살 터울인 오빠와 부모님은 각자 입장에서 잘 살아가는 느낌이 들고 나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 같았죠.”

엄마, 아빠 다시 친해져서 같이 살순 없을까

이런 마음이 이번 영화 토대가 됐다. 이혼은 이 감독의 유년시절 불안감을 증폭해 표현한 설정. 수민은 엄마‧아빠가 다시 친해져서 그냥 다같이 살길 바라지만, 중학생인 오빠 진호(최준우)는 입시학원 강사인 엄마 윤희(김채원)에게 마음이 기운 것 같다. 수민은 엄마 책장에서 아빠와의 연애시절 편지를 발견하지만, 엄마는 구시대 유물 취급한다. 박물관 학예사인 아빠 승원(임호준)은 이미 원룸을 얻어 따로 살고 있다.
아빠랑 살면 재밌을까. 오빠와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 보면 서먹해지지 않을까. 정답 없는 고민에 시달리는 수민과 가족의 모습은 장비 없이 카메라를 손‧어깨로 매고 찍는 ‘핸드헬드’ 촬영에 담아 흔들리는 느낌을 강조했다.

김솔 감독은 전후반부 촬영 방식도 달랐다고 설명했다. 촬영 초반은 가족들 틈에 낀 수민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잡은 풀샷이 많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클로즈업을 활용해 수민의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 아이들이 드론을 날리고 무덤가를 모험하며 자유롭게 활보하는 집밖 풍경과 달리 아파트 내부는 조명도 어둡게 해 가족의 무거운 분위기를 표현했다.

'소리도 없이' 화제의 아역 문승아 먼저 발탁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2018년 8월 촬영 당시 아홉 살이던 문승아는 오디션으로 발탁했다. 그는 이후 촬영한 영화 ‘소리도 없이’가 지난해 먼저 개봉해 상대역 유아인에 팽팽히 맞서는 연기로 화제가 된 바다. 이지형 감독은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감’이 달랐다”며 “디테일이 좋았다. 누군가 자기 개를 데려가서 뺏어와야 한다는 상황극을 주면 보통 아이들은 ‘저 개 내 건데’ 정도로 대처하는데 승아는 그 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유를 만들어서 말을 하더라. 시나리오 자체의 섬세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잘 흡수했다”고 했다.

현장 촬영 진행은 김솔 감독이, 각본을 쓴 이지형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 연출을 주로 맡는 방식으로 협업했다. 서로 다른 성향 덕에 함께 의지하며 시너지가 났단다.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단국대 제작지원을 포함해 순제작비가 3000만 원대로 빠듯하다 보니 극 중 가족의 집은 김솔 감독 부모님댁, 원룸방은 이지형 감독의 자취방에서 찍었다.

“아이들이 엄마‧아빠 중 누구랑 어떻게 살지 궁금해지는 결말이 좋았다”는 김솔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연출할 때 계획을 딱 세워서 생각한 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었는데 영화가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우연으로 좋은 순간이 발생할 수 있고 내 욕심대로만 가면 안 되는구나, 배웠죠. 많은 사람 의견을 듣고 우연을 영화에 생기 있게 잘 받아들이는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각각 사회학·간호사 공부하다 영화감독

대학원에서 영화를 하기 전 김 감독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다 사진동아리 활동을 통해 영화에 빠졌다. “영화제 인턴을 잠깐 하다 한겨레 영화학교에 등록했는데 일주일을 못 쉬고 밤샘 촬영을 해도 재밌고 뿌듯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는 돌이켰다. 이 감독은 간호학과를 졸업해 몇 년간 간호사로 일하다 진로를 틀었다. “대학을 점수 맞춰 갔더니 너무 안 맞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돈 벌면서 소소하게 촬영하고 글 쓰는 취미를 갖다가 저한테 발산하고 싶은 에너지가 있는데 이대로 지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20대 말 1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독립영화 워크숍에 가서 영화 만들기를 처음 배웠어요.”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영화 '흩어진 밤'. [사진 씨네소파]

코로나19로 극장 상황이 여느 때 같지 않지만, 관객을 만나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두 감독은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 이 감독은 스릴러적 요소로 궁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장르 영화를 구상 중이라 했다. 김 감독은 쓰고 있는 극영화와 별도로 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고민하고 있다. “퇴직 5년 차이신데 아버지 성향이 저랑 다르시거든요. 퇴직한 중년 남성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영화를 통해 아버지를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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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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