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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실수로 감옥? 평등법 논란…이상민은 문자폭탄 시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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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1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지금당장'에서 청년진보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1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지금당장'에서 청년진보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이 사적 자리에서 한 말도 차별이 될 수 있고, 사찰·성당·예배당에서 성직자가 한 설교도 차별이 될 수 있다.”

지난 1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 반대에 관한 청원’의 일부다. 이 청원은 등록 나흘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평등법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장애·성적지향·학력 등 21가지 사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청원인은 평등법에 대해 “약자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약자를 도와주는 법이 아니다”라며 “기본 도덕을 파괴하고, 신앙·양심·학문·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원이 지난 14일 국회 법사위에 먼저 회부되고 이와 유사한 평등법이 지난 16일 발의되자, 반대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기독교계에선 “동성애·동성혼이 조장될 것”이란 반발이, 경제계 일각에선 “학력별 임금 차이까지 규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우려에 대해 법안을 만든 당사자 생각은 어떨까. 평등법을 대표 발의한 이상민 의원을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만나 직접 물어봤다. 이 의원은 “이 법은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정당한 차이까지 부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세간의 우려에 대해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해 법 통과를 막으려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평등법은 ‘모든 영역’의 차별을 금지한다. 사석에서 한 말도 규제 대상인가.
그렇다. 그런데 차별 금지 영역을 제한하면, 나머지 영역은 차별이 가능한 사각지대가 된다. 그것 역시 입법적 차별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타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거나 부당하게 차별해선 안 된다’는 건 이제 보편 규범으로 요구되고 있다. 지금도 타인을 심하게 모욕하면 명예훼손죄, 모욕죄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평등법 때문에 사적 발언이 제한된다는 우려는 비약이다.  
그럼 말실수 한 번으로 감옥 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평등법 어디에도 형사처벌 조항은 없다. 차별금지법을 촉구해 온 쪽에서는 형사처벌이 빠진 것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인식에 전환을 불러오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처벌 조항을 제외했다.  

실제 평등법에는 형사처벌 조항이 없다. 차별을 당한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넣거나, 차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 했다. 고의성, 지속성, 보복성이 있는 ’악의적인 차별‘은 손해액의 3~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했다.

민사책임만으로도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다는 지적도 있다.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훼손하거나 피해를 주는 범위까지 허용되는 무제한적 자유는 없다. 자유와 권리라고 해서 오남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현안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현안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평등법 반대 청원에선 “동성애·성전환의 보건적 유해성 및 윤리적 비판을 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우려한다.
동성애에 대한 모든 비판을 금지하자는 게 아니다. 사회상규 범위 내에서의 비판은 종교·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넘는 혐오 표현을 제재하자는 것이다. 
‘사회상규 내’라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도 있다. 소송을 남발하진 않을까.
‘사회상규’는 형법·민법에서 사용되는 법률 용어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상식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무엇인지 공유하고 있지 않나. 소송 남발 우려는 근거 없는 공포심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에서 차별금지법 도입 후 성전환이 증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 되레 반대 추론도 가능하다. 사회적 혐오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소수자가 밖으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사회일수록 거리에서 장애인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공동으로 ‘차별금지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공동으로 ‘차별금지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차별사유 21가지엔 ‘학력’과 ‘고용형태’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최종 학력 간, 또는 비정규직·정규직 간 임금 차이도 금지되나?
터무니없는 지적이다. 채용 시 학력에 제한 두는 것은 기업의 경영권, 사회상규 범위 내 차이다. 평등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거듭 말하듯 이 법은 ‘차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평등법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다른 법률에 따라 차별로 보지 않는 경우’ 등에 해당하는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제5조)도 있다.
양성평등기본법 등이 이미 있는데 왜 평등법이 더 필요한가. 
성소수자·다문화가정·인종 등 현행법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의 차별이 존재한다. 한정적인 개별법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평등법이 필요한 것이다. 현행법과 중복되는 부분에 대해선 향후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통합·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17~19대 국회에서 모두 여섯 차례 발의됐지만, 한 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선 보수 기독교계가 하루 수십통씩 반대 전화를 하며 압박하자, 차별금지법 2건이 두 달 만에 자진 철회되는 일도 있었다. 평등법을 발의한 이 의원 역시 최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 등 문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이 의원은 “평등법이 당장 쉽게 통과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공론화를 치열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법안에 대한 오해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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