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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원샷]홍콩의 눈물…입 막는 게 '중국식 민주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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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국제팀장의 픽: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200년작 '화양연화'의 한 장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왕가위 감독의 200년작 '화양연화'의 한 장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꽃다운 시절, 아름답던 삶…갑자기 외딴 섬이 자욱한 안개와 구름으로 덮였네”

2000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에 흐르던 노래 가사다.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사랑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던 남녀가 새로운 사랑에 눈뜨지만, 끝내 서로에 다가서지 못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자연히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의 불안한 미래를 은유한 것이란 해석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21년이 흐른 지금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됐다. 24일 빈과일보의 폐간은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홍콩 공안은 반중(反中)성향의 이 신문 편집국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고 언론인들을 줄줄이 잡아들였다. 이어 회사 자산까지 동결해버렸고 26년간 발행되던 신문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했다.

시민들이 24일 새벽 빈과일보 사옥 앞에 몰려와 마지막으로 발간된 신문 1면을 펼쳐 보이며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민들이 24일 새벽 빈과일보 사옥 앞에 몰려와 마지막으로 발간된 신문 1면을 펼쳐 보이며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노골적 언론 탄압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성명을 내고 “중국은 기본적 자유를 부정하고 민주적 제도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언론 자유는 면죄부가 아니며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힌 데는 법을 넘어선 권리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중국이 ‘절대적 기준은 없다’며 맞받아 온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3월에 열린 미ㆍ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측이 신장과 홍콩 문제를 거론하자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미국에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에는 중국식 민주주의가 있다. 중국 내정에 왈가왈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에는 이런 '상대주의'를 넘어 아예 '체제 우월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25일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신형 정당제도’를 설명하며“중국이 실행하는 것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협력ㆍ협의 제도”라며 “중국에는 반대당도 야당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서구의 정당은 당파나, 집단,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아 올바른 정책 결정도 못 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이처럼 ‘신형’, ‘중국식’을 내세우는 자신감의 근저에는 서구 민주주의의 실패도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연초 미국에서 벌어진 의회 난입 사건, 끊이지 않는 인종차별 논란과 폭동사태,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은 중국이 서구의 취약성을 언급할 때 꺼내는 단골 소재다. 빈과일보 사태에 대한 서구 언론의 비판에도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막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주의를 수용하고, 수식어를 붙인다해도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법치나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긴 어려워 보인다.

1년 전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분열, 외세와 결탁 등에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정 자체가 극히 모호하다. 보안법의 타깃이 될까 두려움에 떠는 언론인들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정상적(normal)인 언론 활동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적’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알아서 눈치껏 하라’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기자들은 자기 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학자들의 절필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이 전하는 분위기다.

어찌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 더 안타깝다. 각종 수식어를 붙인 제도가 대체로 온전치 못하다는 것 역시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19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가 독재의 다른 이름이었듯.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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