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여성할당제 폐지”…그 신선한 경험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26 00:30

지면보기

742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드디어 내가 이런 날도 보는구나!’

여성운동 필요 없는 사회 만드는 게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
투명 평등 사회 만드는 기본 이념인
성별다양화 정책 가치 여전히 유효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며 대표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냥 딱 이런 느낌이 들었다. 국내 최대 야당 대표가 공식적 어젠더로 이 주제를 제기한 걸 놓고, 일각에선 그를 ‘안티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나 메시지를 보면, 그는 ‘페미니스트’도 ‘안티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그저 할당제 같은 머릿수 늘리기 경쟁, 양으로 균형과 공정을 논하는 걸 촌스럽고 낡은 ‘꼰대 가치’로 치부하는 거로 보였다는 말이다.

인간을 성별에 따라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걸 낡고 한심하게 보는 인류가 나타난 건 신선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페미니즘의 최종 목적지는 ‘여성 운동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내가 2030을 났던 시절은 좀 험했다. 한 예로, 그 당시 신호 대기로 차를 정지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차도로 뛰어와 “건방지게 여자가 차를 모느냐”고 소리치며, 내 차 문을 발로 찬 일도 있다. 그는 일행의 박수를 받으며 인도로 돌아갔다. 이 정도는 그저 사소한 해프닝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절을 극복할 페미니즘 가치마저 없었다면, 나는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 ‘여성이 왜 마이너리티냐’고 되묻는 광경이 펼쳐지니 개인적으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마침 지난주에 한국여성재단에서 열린 ‘한국30%클럽’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어 세미나 원고를 준비하면서 젊은 여성 후배 몇 명과 취재 겸 얘기를 나눴다. 그들도 ‘여성할당제 폐지’ 주장에 쿨했다. 사회생활에 여성할당제 혜택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오히려 여성할당제의 혜택은 여성 정치인이나 고위직에나 돌아가는데, 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행태는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해 ‘피해호소인’으로 여론몰이하는 데에 앞장섰던 일을 모두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이는 아주 나쁜 선례로 각인된 것으로 보였다.

또 할당제의 혜택으로 각종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의 ‘낙수효과’가 없음도 지적했다. 게다가 채용에서 특정 성이 선발 예정 인원의 30% 이상이 되도록 ‘양성평등 채용’을 도입한 공공 부분의 경우 2015년 이후에는 남성 합격자 수를 30% 이상으로 맞추기 위해 남성을 추가 합격시키는 수가 더 많을 만큼 남성 진입 장벽 해소 용도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선데이칼럼 6/26

선데이칼럼 6/26

이처럼 시대가 달라졌다. 사실 ‘여성할당제’라는 말은 ‘성별다양성 정책’을 정치적이고 선동적으로 부르는 용어다. 현재는 특정한 성이 각 조직에서 70%가 넘지 않도록 성별의 균형을 이루자는 게 주 내용이다. 최소한의 물리적 균형을 통해 질적 균형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얘기. 이번 세미나에선 ‘공공부문 성별 다양성 현황과 추세’를 검토했다.

이날 발표된 350개 공공 기관의 여성임원 현황 전수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임원은 전체의 22.1%다. 상임이사는 6.2%이고, 비상임이사가 27.2%라는 점에서 질적인 문제는 있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가 물리적 균형을 향한 노력은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여성 고위직 할당 형식이 의구심을 사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여성 고위직 30% 운동을 여성계가 지속할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사회적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독하게 공고한 공공기관의 ‘엘리트 카르텔’을 깨기 위해 꼭 필요하다.” 실제로 공공기관 이사회는 관료·정치인·공공기관 출신이 포진해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이사회 안건 의결 결과를 보면, 원안 의결이 92.4%에 이른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통해 이견 없는 이사회를 만든 것이다. 여성은 이런 카르텔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 성별다양성 운동은 여성 할당제만 지향하지 않는다. 고위직 여성 할당제는 우리 사회가 마치 성평등 사회인 것처럼 분식하는 데에 가장 눈에 띄기 때문에 이에 치중한 측면도 있다. 실제 성별다양성의 바탕이 되는 생각은 ‘동일 직무, 동일 임금, 근무 환경의 유연화’이다. 그런데 영국 경제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임금은 남성 대비 34.6%가 낮다. 세계 최하위다. 물론 과거 호봉제처럼 눈에 띄는 성차별 급여 제도는 없다. 그런데도 격차는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공고하다.

요즘은 ‘동일 직무 다양한 채용 제도’를 통해 애당초 연봉 격차가 전제된 상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남의 연봉은 알 수도 없는 연봉제 미명 아래 스펙 높은 여성 인력을 저임으로 채용하는 정책을 구사하는 기업들도 있다. 너무 세련되고, 교묘하고, 다양해 꼬투리 잡기도 힘들다. 남성들에겐 기회가 없고 여성들은 저임의 굴레에 빠지는 악순환. 한국이 여성 자살 세계 1위를 달리는 것이 이렇게 미래도 비전도 없는 생활고 때문은 아닌지 이젠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페미니즘이 추구한 원시적 가치는 균형과 평등의 휴머니즘이다. 지금은 여성도 남성도 좌절감이 큰 시대다. 이런 때엔 성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를  좌절시키는 ‘구조적 악덕’을 찾아내 함께 대응하는 사회적 연대에 나서는 게 그나마 나은 길이 아닐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