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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A 백신 신속 개발, 주류와 다른 방향 연구 산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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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06면

[SUNDAY 인터뷰]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요즘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자부심도 맛보지만 초라함도 느낀다. 방역 선진국이지만 정작 백신 개발·확보에서 뒤처진 현실 말이다. 남들처럼 백신을 초고속 개발하려면 결국 기초과학 역량이 튼튼해야 한다는 게 상식적인 답일 텐데,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기초과학 선진국이 되려면 과연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더구나 빼어난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로만 몰리는 현실에서 말이다.

『물은 H₂O인가?』 한국어판 출간 #제약사들 한 방식에 올인 안 해 #예상 못한 긴급 사태 대비 가능 #과학계 주류 정답주의 벗어나고 #관점 다르다고 상대 압박 말아야 #기초과학 연구 학생 없어 아쉬워 #긴 비전 갖고 순수과학 육성 필요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과학철학과 장하석(54) 석좌교수에게 그 해법을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함에서 드러나듯 그는 이를테면 ‘훈수꾼’이다. 한 분야에 매몰돼 연구에 매진하기보다 과거 과학 연구의 혁신적 사례들을 분석해 그것들의 과학적·과학철학적 의미를 캐는 게 전문 분야다. 그런데 그런 작업에 매달린 끝에 도달한 결론이 무척 파격적이다. 과학 연구에서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따라 일원주의·환원론·실재론 같은, 유일한 진리에 집착하는 모든 과학적 입장과 도그마를 문제시한다. 그렇다면 우주 로켓은 어떻게 쏘아 올리나. 그런 일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단 하나의 정답이 필요한 것 아닌가.

문학작품처럼 과학도 다양한 관점 중요

케임브리지대 과학사-과학철학과 장하석 석좌교수.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물은 H2O인가?』에서 과학 다원주의 주장을 펼쳤다. [중앙포토]

케임브리지대 과학사-과학철학과 장하석 석좌교수.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물은 H2O인가?』에서 과학 다원주의 주장을 펼쳤다. [중앙포토]

장 교수의 주장은 우리 주변의 과학적 사태들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거다. 모든 자연현상을 모조리 설명하는 단일한 과학 원리 같은 건 찾기 어려워 보인다는 얘기다. 여러 개의 과학 이론이 ‘실재’에 부합하는 나름의 진실을 각각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과 과학에 대해 지금보다 좀 더 겸허하고, 보다 열려 있어야 한다. 서로 모순된다 하더라도, 다양한 과학 이론 시스템들을 동시에 인정하자는 다원주의적 주장이다.

이런 생각이 담긴 장 교수의 책 『물은 H₂O인가?(Is Water H₂O?)』(김영사·사진)가 한국어판으로 막 출간됐다. 난해함 때문인지 2012년 영어 원서 출간 후 9년 만이다. 역시 자명하다고 여겨왔던 과학 지식을 문제 삼는다. 물의 분자식 말이다. 과학 문외한은 전체 5개 장의 각 1절만 읽어보라는 장 교수의 조언을 따랐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낑낑대다 보니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기자가 옳게 이해했다면 물은 H₂O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지난 18일 장 교수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영국의 코로나 상황이 다시 심상치 않다고 들었다.
“여기 케임브리지는 심각하지는 않다.”
과학사가, 과학철학자 입장에서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평가한다면.
“코로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 뭐라고 하기가 그런데, 일단 예상보다는 백신이 빨리 개발됐다. 여러 나라 정부가 허가를 빨리 내주고 지원도 많이 했지만 결국 지난 수십 년간 관련 분야에 대한 기초과학 연구를 계속 해왔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화이자나 모더나는 소위 mRNA(메신저 RNA)를 활용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백신을 개발했는데, 어떤 면에서 이들은 좀 허황된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전혀 새로운 개념의 백신을 개발하게 된 거다. 진부하게 해석하자면, 항상 이렇게 광범위한 기초과학 연구를 하고 있어야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화이자나 모더나 사람들이 다원주의적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약회사가 함부로 허튼짓은 안 한다. 돈을 벌 비전이 있기 때문이었겠지만 mRNA 방식을 그렇게 연구했다는 거는 어떻게 보면 모험을 한 거다. 그렇게 주류와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게 내가 말하는 과학 다원주의의 기초다. 그러니까 하나에 올인하지 않는 거다. 어느 길이 끝까지 뚫릴지 모르니까 여러 길을 뚫어 놓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다원주의의 첫 스텝이다. 그러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 간에 교류와 협업도 이뤄질 수 있다.”
과학계 주류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한데, 세계적으로도 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정답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문학작품은 관점에 따라 의견차가 있을 수 있고 다른 해석도 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반면 과학 문제에 있어서는 유일한 진리가 존재하고, 그 진리를 찾아 모두가 동의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그런 과학계 주류에게는 다원주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들릴 거다. 하지만 우리가 과학의 정답주의를 벗어나면 더 좋은 성과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과학의 역사를 뜯어보면 생각보다 다원주의적인 경향이 상당히 많았다.”
물은 H2O인가?

물은 H2O인가?

장 교수의 과학 다원주의를 물의 경우로 생각해 보면 이렇다. 현대과학에 따르면 물은 더이상 수소 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가 결합한 단순한 화합물이 아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고,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소+산소=물’ 공식이 확립된 건 18세기 말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책에서는 ‘라봐지에’로 표기)가 주도한 ‘화학혁명’을 통해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플로지스톤 시스템’이 조기 퇴출됐다. 플로지스톤 시스템은 라부아지에 시스템과 다른 방식으로 수소와 산소, 물의 관계를 설명한 이론이라고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플로지스톤 시스템이 성급히 폐기되지 않고 라부아지에 시스템과 공존했더라면 이 분야 과학이론이 더 빠르게 발전했으리라는 생각이 장 교수의 다원주의다.

학계에서 별난 주장 취급받는 건 아닌가.
“상당히 반응이 좋은 편이다. 꼭 나 때문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학자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원주의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개별 연구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파고드는 분야에 진리가 있다는 일원주의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잡생각 하지 말고 연구에 집중하자, 저런 이상한 생각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고 우리는 이 길을 뚫는다, 역시 이런 태도가 많긴 하다. 나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빗댄다면 폭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각 정당이 자기들만 옳다는 주장을 펴고 투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장이 다당제 민주주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한 다당제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보다 잘 살 수 있게 해준다. 과학도 유년기에는 진리는 하나고, 우리 모두 그것만 추구해야 한다는 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이 성숙해지면서 서로 관점이 다르다고 상대를 압박하지는 말자,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고 그런 태도가 실천되어야 한다.”
다원주의도 결국 하나의 입장이니까 남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철학적으로 심각한 얘기다. 또 정치에 비유하자면, 다원주의의 한계는 다원주의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독일에서 나치당 창당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독재가 좋다는 생각이나 표현의 자유 자체는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으로 돌아와서,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 사람들의 연구를 막지만 않으면 된다. 실용적인 문제도 있는데, 정말 이상해 보이는 연구도 지원해줘야 하느냐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인데, 미친 시도가 어떻게 유용할지 알 수 없으니 도박하듯 영국 정부가 과학 예산의 1%만이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얘기를 해보자. 코로나 백신 개발을 못 하는 건 역시 기초과학이 허약하기 때문인가.
“박정희 정권 때까지만 해도 과학 육성은 기술 개발해서 경제발전에 쓰자는 단기적인 거였다. 박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비전이 긴 분이었는데, 우리도 중화학공업 일으킬 수 있다, 자동차 만들 수 있다, 그런 거였지 기초과학을 육성해 당장은 상상 못 하는 기술을 언젠가 개발하자는 건 아니었다. 그런 식은 이제 밑천이 떨어졌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잘살게 됐다. 이제는 해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이미 과학 분야 연구개발 투자비가 상당하지 않나.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정부가 성과를 기준으로 지원하는 느낌이다. 기초학문 연구가 작년에 돈 받았다고 올해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화적으로도 좀 힘들다고 본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과학도 드라마처럼 문화 일부로 생각해야

역시 빨리빨리 문화가 문제인가.
“정부 지원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문화도 문제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려는 학생이 없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85학번인데, 당시 대입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이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하던 시기가 있었다. 순수과학에 대한 그런 정열이 왜 사그라들었는지 안타깝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기초과학을 연구한다는 건 학생 개인에게도 모험이다. 연구할 인력이 없는데 정부가 아무리 기초과학을 지원한들 뭐하겠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 갖게 하려면.
“과학을 문화의 일부로 여기게 해야 한다. TV 드라마나 예술작품을 즐기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미개인들조차 신화가 됐건 원시적인 종교가 됐던 그런 틀을 통해 아, 자연은 이런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곳이다 하는 세계관을 갖는 게 인간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현대인은 자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 졸업만 하면 관심을 끊는다. 부모님들이 과학 대중서라도 읽고, 아이들을 동물원에라도 데리고 가고, 생물학과 진학하겠다고 할 때 말리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있다면. 해외 유학 갈 때 불안감은 없었나.
“매혹을 느끼는 학문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나는 운이 좋아 집안의 지원이 튼튼했지만 훌륭한 학자나 예술가 가운데 가난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일에 빠졌던 사례가 역사적으로 많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장하석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공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과학사가, 과학철학자다.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차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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