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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경고 “지나친 코로나 봉쇄는 독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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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21면

얼굴 없는 인간

얼굴 없는 인간

얼굴 없는 인간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효형출판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 제한, 마스크 착용 의무화, QR 체크, 락다운(Lockdown) 봉쇄 조치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제약하는 엄격한 보건통제가 1년 동안 지속돼 왔다. 다행히 비교적 신속했던 백신 개발과 접종으로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델타 바이러스 같은 변이가 급속히 확산할 조짐이어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쓴 『얼굴 없는 인간』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노멀에 대한 ‘인문적 사유’를 담았다. 주로 이탈리아 사회를 예로 들면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행정권력의 과도한 조치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전환’이 강요되고 있는데 아감벤은 보건 긴급 사태가 발동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헌법적 보장이 말 그대로 정지된 ‘예외상태(Stato di Eccezione)’로 규정한다. 이런 상태에 존재하는 사람을 ‘벌거벗은 삶(Vita Nuda)’, ‘호모사케르(Homo Sacer)’라고 칭했다. 지금의 상황을 히틀러의 나치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전개하려는 목적으로 바이마르헌법을 공식적으로 폐지하지 않고도 12년 동안 예외상태로 지속한 때와 비교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유로 2020 독일과 헝가리의 축구 경기가 열린 뮌헨에서 경찰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축구팬에게 경고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3일 유로 2020 독일과 헝가리의 축구 경기가 열린 뮌헨에서 경찰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축구팬에게 경고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정부가 오래전부터 우리를 길들이고자 했던 예외상태가 일반적인 노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전염병으로 인해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우리는 지금 소위 ‘안전의 명목’으로 자유를 희생하며, 두렵고 불안한 상태에 영원히 살도록 우리 자신을 정죄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봤다. 개인의 두려움, 집단적 패닉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잘못된 고리를 통해 정부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삶을 잃는다는 두려움 위에 독재 권력이 싹틀 수 있고, 칼을 뽑은 괴물 리바이어던만이 존재할 수 있게 됐다고 아감벤은 주장한다. 매 순간 무한한 통제가 이뤄지는 공허한 이곳에서 개인은 얼굴 없는 이름으로 타인들과 단절된 채 활동한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이런 상황을 시(詩)로 비판하기도 했다. “헌법이 폐지되었다,/긴급 상황의 명분으로/그러나 긴급 상황은 폐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래되고 낡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대체하고 있는 기술-보건적 독재주의를 그대로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며 새로운 저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일부 글은 공개와 동시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스크 벗기를 주장하는 엉뚱하고 철없는 철학자의 아집에 불과하다는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론과 이견이 묵살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제기했어야 하는데 아감벤이 그 선봉에 섰다며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K 방역은 지난 1년 동안 세계에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행정당국의 강도 높은 통제로 코로나19 확산을 선제적으로 잘 막았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나친 자유 제한 조치를 남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도 팬데믹과 그에 관련된 예외상태, 긴급조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아감벤의 주장에 동조하든 않든 그 판단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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