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인의 사회

최고 멀티 플레이어, 정 많은 리더십…“짧았어, 진짜 짧았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2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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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25면

[죽은 철인의 사회] 축구 레전드 유상철

유상철(1971~2021)의 부음을 접한 다음날인 6월 8일 저녁, 서울 아산병원을 찾았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전사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도열해 있었다. 홍명보·황선홍·안정환·최용수·김병지….

다큐 ‘유비컨티뉴’ 조회수 늘어
코뼈 부러진 채 헤딩골 투지 대단
J리그 시절 일본 팬도 쾌유 기원

강등 위기 팀들 맡아 혼자 속앓이
선수에 화 안내고 따뜻하게 지도

이강인과 ‘날아라 슛돌이’서 인연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개발을”

그들은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정몽준이 지휘하는 특전단 단원이었던 그들은 한마음으로 뜨거운 여름을 만들어냈다. 아산병원 이사장이기도 한 정 회장은 유상철이 입원한 뒤 “우리 병원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상철이를 살려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한다. 정 이사장뿐이었으랴. 모두가 기적을 기도했다.

떠난 뒤에야 나는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멋진 남자인지 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유비컨티뉴’가 ‘사람 유상철’을 보게 해 주었다. 유비는 유상철의 별명이고, 컨티뉴(continue)는 계속된다는 뜻이니 제목의 함의는 알 터이다.

GK 뺀 전 포지션서 K리그 베스트11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린 유상철. [중앙포토]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린 유상철. [중앙포토]

10~25분짜리 12부작 다큐멘터리는 유상철이 췌장암 4기임을 공개한 2019년 10월 시작한다. 11월 24일 빗속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첫 승을 이끈 경기, 4년간 뛰었던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초청으로 이천수와 함께 간 요코하마 여행, ‘날아라 슛돌이’에서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은 이강인과의 재회 등이 담겨 있다.

2020년 2월 23일. J리그 개막전. 요코하마 서포터들은 한글로 쓴 ‘할 수 있다  유상철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곳곳에 태극기가 보였고, 마리노스 시절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킥오프 전에 “유상철”을 소리 높여 외쳤다.

요코하마 시내에서 팬 미팅도 열렸다. 서포터들이 직접 준비한 정갈한 뷔페 음식이 차려졌다.

28년째 마리노스 팬이라는 남성이 말했다.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2개의 골 중 하나가 2003년 10월 26일 J리그 경기 추가시간 동점골입니다. 유상철 선수가 등번호 2번을 달고 사이드백으로 출전해 넣었죠. 그 장면 보면서 울었어요. 어떻게 그런 진심어린 골이 나왔는지….”

유상철이 화답했다. “저는 늘 자신보다 소속팀과 선수들에 대한 생각이 더 큽니다. 정말 중요한 경기라 지고 싶지 않았고요. 그 진정성이 전달돼 감동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남자 한 명이 또 일어섰다. “저도 암에 걸렸어요. 형님 고통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에) 일 있었는데 거짓말 하고 왔습니다.”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유상철이 뛸 당시 마리노스 구단 부사장이 말했다. “어깨가 탈구됐는데도 스로인 던지는 걸 봤어. 상철은 절대 병으로 쓰러지지 않아.”

2019년 K리그 최종전에서 1부 잔류를 확정한 인천 선수들이 유상철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K리그 최종전에서 1부 잔류를 확정한 인천 선수들이 유상철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유상철은 “여러분들의 좋은 기운 받아서 돌아갑니다. 반드시 완쾌해서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독을 하고 싶습니다”고 약속했다.

유상철은 한국축구 ‘원조 멀티 플레이어’였다. 최후방 수비부터 최전방 스트라이커까지 골키퍼 빼고는 안 맡아 본 포지션이 없었다. 역대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믿었던 선수가 문제가 생기면 늘 유상철을 찾아 ‘땜빵’을 맡겼다.

유상철은 서울 경신중-고, 건국대를 졸업하고 K리그에서는 울산 현대에서만 뛰었다. 1m84㎝ 78㎏의 당당한 체격에 상대보다 머리 하나는 더 떠서 헤딩을 할 정도의 탄력과 강력한 슈팅 능력을 가졌다. 위치 선정이 뛰어났고 투지와 승부욕이 남달랐다. 2001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지고도 헤딩 결승골을 터뜨렸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동점골, 2002 월드컵 폴란드전 쐐기골을 포함해 A매치 124경기에서 18골을 넣었다.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포지션으로 K리그 베스트11에 오른 유일한 선수가 유상철이다. 1998년에는 득점왕도 차지했다.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는 1999~2000, 2003~04 시즌을 뛰었으며 2003, 04년 요코하마의 J리그 2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한 유상철은 축구계를 떠나 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네가 배우고 경험한 걸 전수해 주지 않으면 이기적이고 죄 짓는 거다”는 말을 듣고 지도자로 방향을 틀었다. 2007년 KBS ‘날아라 슛돌이’에서 만난 선수가 일곱 살 축구 천재 이강인이었다. 이강인은 스페인에 조기 유학해 1부리그 명문 발렌시아에 입단했고, 국가대표까지 성장했다.

“완쾌해 감독 맡겠다” 약속 못 지켜

6월 9일 A매치가 열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유상철 추모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중앙포토]

6월 9일 A매치가 열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유상철 추모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중앙포토]

유상철은 춘천기계공고와 울산대 등 아마추어 지도자를 경험했고, 프로에서는 대전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를 지휘했다. 공교롭게도 세 팀 모두 그가 맡았을 당시 2부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팀 형편이 어렵고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유상철은 온갖 비난과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하며 선수들에게만 온 정성을 쏟았다. 한 번도 선수들을 혼내거나 체벌하지 않았다. 혼자 받아낸 스트레스가 결국 암을 키웠을 거라는 게 주위의 말이다.

‘유비컨티뉴’에는 2019년 겨울 경기도 용인의 한 캠핑장에서 유상철과 이강인이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상철은 직접 고기를 구워주며 얘기한다.

“강인이는 남들에게 없는 많은 걸 갖고 있어. 그것에 감사하고 더 개발해야 해. 인기와 실력이 올라갈수록 따라오는 건 주위의 시기와 질투야. 자기 중심을 갖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제자가 말했다. “빨리 완치하셔서 다시 제 감독님이 돼 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상철은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독이 되겠다는 약속도, 이강인의 감독이 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요코하마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유상철이 한 말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인생 소풍을 먼저 마친 그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짧았어, 진짜 짧았어. 더 오래 있고 싶더라. 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

“스포츠 스타 일대기 다큐 사랑 받았으면”
요코하마 마리노스 팬들과의 만남을 담은 ‘유비컨티뉴’ 영상. [터치플레이]

요코하마 마리노스 팬들과의 만남을 담은 ‘유비컨티뉴’ 영상. [터치플레이]

다큐멘터리 ‘유비컨티뉴’는 올해 초 유튜브와 네이버를 통해 공개됐다. 초반에는 조회수가 많지 않았다. 유상철이 세상을 떠난 뒤 ‘역주행’을 시작해 점점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다.

유비컨티뉴 제작에 깊숙이 관여한 A씨를 전화로 만났다. 스포츠 관련 비즈니스를 하며 2002 멤버들과 친하다는 그는 “상철이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상철이를 위해 뭐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제목은 ‘유상철의 마지막 약속’이었고, 상철이를 보낸 뒤에 오픈하려고 했다. 협찬사의 요청으로 올해 초 공개했는데 당시는 상철이가 호전됐다는 뉴스가 나와서인지 조회수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씨의 회상이다. “다큐를 찍는 내내 애틋했다. 상철이는 ‘완치된다는 보장만 있으면 어떤 치료든 받겠는데 그게 아니니 힘이 빠진다. 가끔’이라고 털어놨다. 영상 속에 간접광고 등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상업적 요소는 일절 배제했다. 이 영상은 상철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보고 또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포츠 스타의 일대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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