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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흔들면 열매 덜 맺어, 조직 안정돼야 성과 더 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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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서광원 칼럼

서광원 칼럼

옥수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잘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 더러는 어른 키보다 높아지기도 한다. 이런 옥수수를 키가 작을 때부터 매일 30초씩, 들판의 바람이 흔드는 것처럼 흔들어주면 어떨까? 잘 자랄까? ‘하루 24시간 중 30초 밖에 안 되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별 일 아닌 것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다. 열매인 옥수수가 30~40%나 적게 열린다.

바람같은 외부 힘, 방해물로 간주 #열매보다 뿌리·줄기에 더 신경 써 #리더 애정, 직원은 간섭으로 느껴 #눈치 보고 불안감 달래는데 치중 #열심히 일하는 환경 만들어 줘야

우리 생각과 달리 옥수수는 외부의 힘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마뜩찮아 할 정도가 아니라 삶의 방해물로 여긴다. 그래서 생존의 우선순위를 바꾼다. 매일 무언가가 삶을 방해한다면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매가 아닌 뿌리와 줄기, 이파리를 튼튼하게 하는데 자원을 더 많이 투자한다. 일단 살고 봐야 열매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뭐 별 일 있겠어 하는 식으로 쉽게 여겼다가 더 센 바람이 불어와 줄기가 꺾이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미리미리 대비한다.

그러면 이렇게 흔들지 않고 ‘애정’을 쏟으면 어떨까? 화분 두 개에 콩을 한 알씩 심은 뒤 바람이 없는 방에서 다르게 키워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다르게’란 한 쪽 콩은 손도 대지 않은 채 물만 주고, 다른 콩에는 애정을 듬뿍 쏟는 것이다. 매일 몇 번씩 줄기를 두 손가락으로 살살 비벼주거나 문질러주는 식으로 말이다. 일주일쯤 지나면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다. 대충 눈으로만 봐도 어느 쪽 콩이 잘 자라는지 알 수 있다. 어느 쪽일까?

철저히 외면한, 그러니까 가만히 놔둔 콩이 더 잘 자란다. 왜 날마다 애정을 듬뿍 준 콩이 더 잘 자라지 않을까? 우리는 애정을 듬뿍 쏟으면 잘 자랄 것이라고 여기지만, 이건 우리 생각일 뿐 콩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다. 옥수수가 자신을 흔드는 바람을 방해물이라고 여기듯 콩도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흔들리는 옥수수처럼 위로 솟아오르기보다 줄기를 단단하게 하는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아, 이곳은 쉽게 자랄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해코지가 많은 곳이니 줄기를 튼튼하게 해야겠구나, 라고 말이다. 이 콩은 다른 환경으로 옮겨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옥수수가 그렇듯 열매를 더 적게 만든다. 애정의 역효과다.

이런 일은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도 흔하다. 어느 회사에서나 옥수수처럼 잘 자라려는 사람을 흔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이면 날마다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 자기 딴에는 애정을 쏟는다고 하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러울 뿐만 아니라 간섭이나 억압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문제는 흔드는 사람과 자기 방식으로 애정을 듬뿍 주는 사람들이다. 정작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매일’ ‘시간만 나면’ 상대를 흔드는지 모른다. 또 흔들어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러면 월급 받고 사는 게 쉬울 줄 알았어?’ ‘한번쯤 혼을 내줘야 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날마다 흔들어대면서 왜 남들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린다. 시달림을 받는 구성원들은 흔들림을 당하는 옥수수나 괴롭힘을 당하는 콩처럼 열매(성과)보다 뿌리와 줄기, 그러니까 눈치를 보고 불안을 달래는데 에너지를 더 쓰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우가 주창한 욕구 이론은 피라미드와 비슷하다. 맨 아래에 1단계 생리적 욕구가 있고, 위의 2단계에는 안전 욕구, 3단계에는 소속과 애정 욕구, 4단계와 5단계에는 존재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회사에서는 주로 3단계 소속 욕구를 중시한다. 항상 소속감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단계가 1단계와 2단계, 그러니까 생존 욕구가 충족되어야 이를 수 있다는 걸 잘 모르거나 경시한다. 곧바로 건너뛸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이 1, 2단계가 바로 요즘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인데 이들은 회사 다니고 있으니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시로 조직을 흔든다. 왜 소속감을 가지지 않느냐고 하고, 왜 더 빨리, 더 많은 성과를 올리지 않느냐고 한다. 옥수수를 흔들고 콩에게 애정을 듬뿍 쏟으면서 왜 더 많은 열매를 맺지 않느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와 몽골의 칭기즈칸은 알다시피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정복자들인데 그들은 전투를 잘 하기도 했지만 병사들이 전투를 잘 하게끔 하는 것도 잘 했다. 무엇보다 병사들의 월급을 제 때, 제대로 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욕구(심리적 안전감)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었고 열심히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서 생겨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변화로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세상이다. 일을 내세우며 불안하고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조직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때일수록 리더가 할 일은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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