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린 피가 얼어붙던, 매서운 겨울 장진호 전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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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20면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햄프턴 사이즈 지음
박희성 옮김
플래닛미디어

미 해병 1사단, 중공군과 맞붙어
상당한 타격 입히고 후퇴 성공

“졌지만 지지 않은 듯한 싸움”
방대한 자료로 세밀하게 복원

전사(戰史)에서 전쟁의 승패는 칼로 무를 자르듯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승리라는데 승리가 아닌 듯하고, 패배라는데 패배가 아닌 듯한 싸움이 제법 있다.

‘피로스의 승리’가 대표적이다. 고대 그리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 1세가 로마를 상대로 여러 번 이겼지만, 아군의 손실이 너무 컸다.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고사성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북해에서 영국과 독일은 유틀란트 해전에선 서로 완승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영국의 피해가 독일보다 상대적으로 심각했다. 그러나 영국은 북해의 제해권을 잃지 않았다. 독일 전함은 이후 좀처럼 항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국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1950년 겨울 장진호 전투는 어떻게 분류해야 하나. 장진호 전투는 그해 11~12월 미국 해병 제1사단이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주군 일대에서 중공군 제9병단과 맞붙은 전투다. 병단은 군단 위 야전군급 편제다.

미 해병대는 인해전술로 밀려들어 오는 중공군과 싸우면서 후퇴한 뒤 흥남에서 선편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살을 에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악전고투를 벌였다. 살점이 소총에 눌어붙고, 상처에서 흘린 피가 얼어붙을 만큼 매서운 겨울이었다.

1950년 11월 미 해병대원들이 장진호 서쪽 유담리, 덕동 고개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사진 플래닛미디어]

1950년 11월 미 해병대원들이 장진호 서쪽 유담리, 덕동 고개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사진 플래닛미디어]

중국은 장진호 전투를 대대적 승리라고 선전하고 있다. 후퇴했으니, 미 해병대가 전투에서 이겼다고 말하긴 곤란할 게다. 그래서 미국 내부에서도 패배라 부르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의 6·25 연구가인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일성은 51년 1·4 후퇴로 서울을 점령한 펑더화이(彭德懷)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사령관에게 미군을 추격하라고 독촉했다. 미군의 매서운 화력을 맛본 펑더화이는 이를 거절했다. 장진호 전투로 9병단이 수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어 동부전선에서 남쪽으로 밀고 내려갈 전력이 부족해진 원인도 있었다.

미 해병대가 적 앞에서도 군기를 유지하며 물러나면서 중공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줬기 때문에 일방적 패배는 분명 아니다. 중공군의 기세를 꺾었으니, 미 해병대 입장에서 대놓고 부르긴 쑥스럽겠지만, 전략적 승리에 가까울 것이다. 미 해병대사령부가 있는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장진호기념비가 세워진 배경이다.

미 해병대 장진호 전투 참전자들은 초신퓨(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에서 생존한 소수’라는 뜻이다. 초신은 장진(長津)의 일본어 표기다. 당시 미군이 한국어 지도가 없어 일본어 지도를 사용한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 저술가 햄프턴 사이즈는 수많은 기밀 해제 문서와 다양한 구술 보고서, 미발표 편지를 읽고 수십 명의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를 인터뷰하면서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On Desperate Ground)』를 썼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을 생생한 필체로 그려냈다. 때 이른 더위에도 그날의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네폰이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한 다른 용병을 이끌고 고향으로 되돌아온 『아나바시스』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손자』에 나오는 9가지 지형(九地) 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사지(死地)를 영어로 푼 것이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이 손자병법을 애독했다고 한다.

장진호는 한반도의 등뼈인 태백산맥 고원지대에 있다. 좁은 산길의 보급로는 우회로가 없었고, 언제라도 적에 의해 끊길 수 있었다. 근처에 철도도 없었다. 중공군은 미 해병대를 가둬놓고 전멸시킬 작전을 짰다.

미 해병대는 지리(地利)뿐만 아니라 천시(天時)도 불리했다. 함경도 산골은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그해 겨울은 추위가 더 모질었다. 하지만, 인화(人和)로 사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 해병대엔 전우를 실망시키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고, 전쟁터에 죽은 전우를 남겨두지 않는 전통이 있다. 2017년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인 진 폴 화이트는 50년 9월 의정부에서 부상을 당해 일본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장진호 전투 소식을 듣고선, 수송기편으로 원대복귀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전우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말했다.

올리버 스미스 미 해병 1사단장의 리더십도 한몫했다. 그는 쾌속전진하라는 지휘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진지를 쌓고 비행장을 닦았다. 중공군이 파괴한 황초령 수문교에 일본에서 공수한 장간조립교를 놓아 병력과 장비가 빠져나가는 장면은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과 견줄 만하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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