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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의 비극, 무슨 일이 있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2호 21면

절멸과 갱생 사이

절멸과 갱생 사이

절멸과 갱생 사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연구팀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부랑인(浮浪人)’이라는 단어에는 실은 비극적인 우리의 과거사가 숨어 있다. 일정한 주거나 생계수단 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살아가는 이들을 뜻하는 ‘부랑인’들은 어쩌면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해야 할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였다.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의 비극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이다.

『절멸과 갱생 사이』는 이러한 형제복지원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학술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형제복지원연구팀’의 연구자 8명은 4년간 다양한 각도에서 형제복지원을 추적했다. 1987년 당시 수용된 인원이 3000명이 넘고,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0여명에 이르는 형제복지원의 탄생 배경과 운영 구조, 내부 폭력 양상을 분석했다. 강제노역과 온갖 학대와 폭력 속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의 실태를 드러내고자 수용자들의 수기와 구술 기록도 함께 담았다.

그러나 연구팀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단지 독재정권의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이 사건이 현재까지 충분히 공론화되지도, 해결되지도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 원인이 부분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연구팀은 기존의 연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하층민과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배제의 문제를 드러냈다. 이들은 “오늘날에는 형제복지원과 같은 극단적인 시설이 없을지 모른다”면서도 “복지나 교정, 치료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가정과 일터와 놀이터가 분화되지 않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한 채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형제복지원의 등장은 근대화·문명화의 결과라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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