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밀착취재 - 1년차 수습 초임변호사24시

중앙일보

입력 2021.06.26 00:03

근로기준법 적용돼 연차휴가 가능하지만 언감생심… ‘법의 사각지대’

힘들어 수습 근무처 옮기면 참을성 부족, 불성실 낙인찍혀 엄두 못 내

“손에 쥔 월급 120만원.... 자정 전에만 퇴근하면 다행”

수습변호사는 로펌 대표로부터 실무수습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확인서를 받지 못하면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갑을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수습변호사들은 열정페이·성추행 등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수습변호사는 로펌 대표로부터 실무수습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확인서를 받지 못하면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갑을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수습변호사들은 열정페이·성추행 등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장면 1. “이번 주도 주말 출근 예정입니다. (주말에) 선배가 시킨 서면을 작성해야지, 안 그러면 기한 내에 못 맞춥니다. 서초동 기준으로 보통 평일 퇴근 시간이 6시인데, 실상은 자정만 넘기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휴무요? 그런 걸 바라고 일하는 수습변호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서초동 로펌에서 변호사 실무 수습을 받고 있는 30대 A씨가 장탄식을 연발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업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소속 로펌이 다루는 사건 관련 서면 작성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고 한다. 선배 변호사들은 근무 시간 대부분을 재판 출정이나 조사 입회에 할애하기에 사무실을 비운다. A씨는 “과중한 업무보다 더 힘든 건 조언을 구할 곳이 없다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장면 2: “수습 기간에는 월급이 120만원 정도인데, 월세 내고 나면 밥 사 먹는 거 외에는 다른 데 돈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월세가 싼 곳으로 이사를 가자니 야근 후 택시비가 더 나올 것 같고, 집에 잘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비싼 월세를 계속 내야 하는지…. 수습처(수습 받고 있는 로펌 사무실)를 옮겨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남의 소형 로펌에서 수습을 받고 있는 B씨는 기간이 몇 개월 남지 않았음에도 옮길 생각을 갖고 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으로는 수습처가 있는 강남에서 생활하기가 버거워서다. B씨는 “부모님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수습 후에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는 B씨는 “수습 기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습을 막 끝낸 30대 초임변호사 C씨는 두 사람의 불만을 전해 듣더니 “블랙펌에서는 다반사”라고 잘라 말했다. 블랙펌(블랙리스트+로펌)은 업계에서 열정페이·노동착취 등으로 악명이 높은 수습처를 가리키는 은어다. 이곳에서 수습변호사는 주말 없이 근무하면서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C씨는 “요즘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무급으로 수습을 부리는 곳도 있다”며 “몇몇 로펌에서는 약간의 교통비만 지급한다”고 귀띔했다.

“연차 사용할 때도 로펌 상급자 눈치 봐야”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1700명을 넘은 가운데 변호사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수습처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수습교육을 받을 수 있는 로펌이 부족해 합격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블랙펌에서 수습 과정을 밟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사진:연합뉴스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1700명을 넘은 가운데 변호사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수습처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수습교육을 받을 수 있는 로펌이 부족해 합격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블랙펌에서 수습 과정을 밟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사진:연합뉴스

수습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초동을 기준으로 수습변호사의 출근은 10시, 퇴근은 6시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수습변호사들은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맡은 일을 정해진 기한에 끝내려면 야근은 필수라는 것이다. A씨는 “수습변호사의 삶은 여느 초보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주말에 출근해도 대체휴무는 없고, 연차를 사용할 때도 눈치를 봐야 한다. C씨는 “수습 시절 선배에게 연차를 쓰겠다고 했더니 ‘수습에게 연차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 곧바로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근로기준법상 수습변호사도 근로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상시 근로자 수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1개월 개근한 수습변호사에게 1일 연차를 부여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로펌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법을 다루는 곳에서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중앙이 취재한 변호사 세 명은 부당한 대우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딱히 배울 것이 없는’ 현 수습 제도의 문제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습 제도의 취지는 갓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실무를 가르침으로써 수습 기간 종료 후 변호사로서 제 몫을 하도록 교육하는 데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같은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변호사법 제21조의 2(법률사무소 개설 요건 등) 제1항 ‘6개월 이상 법률 사무에 종사한 경력이 없으면 법무법인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수습변호사는 지극히 제한적인 업무만 담당한다. ▷서면 작성 ▷사건 검토 ▷자문 검토 등이 수습변호사의 주된 업무다. 수습변호사는 단독으로 재판 출정을 할 수 없으며, 변호인이나 대리인으로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입회도 제한된다. 변호사 업무의 10분의 1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현 수습 제도의 실태다.

기본적인 서면 작성조차 수습처에서 제대로 교육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수습변호사들의 하소연이다. C씨는 “일단 수습변호사가 출근하면 사수(선배)가 사건을 던져주고 알아서 (서면을) 쓰라는 식이다. 수습 단계에서 그런 경우를 수차례 당했다”며 “어떤 수습처는 그나마 선배가 빨간 펜으로 첨삭해주지만, 어떤 수습처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잡아주지 않는다. 그러고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 오라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수습변호사는 “너 글쓰기 처음 하냐?”, “초등학생보다도 글을 못 쓴다”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듣기 일쑤다.

철저한 갑을관계,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

초임변호사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가 5월 31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초임변호사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가 5월 31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수습처를 옮기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여기에서는 더 배울 게 없어’ 또는 ‘내가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어’라고 판단한 수습변호사들이 수습처를 옮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C씨는 “어느 날 ‘내가 이걸 한다고 변호사로서 실무 능력이 배양되나?’라는 회의감이 들더라. 그래서 수습처를 옮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습변호사는 생각만 할 뿐 자신처럼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한다. ‘참을성이 없다’, ‘불성실하다’ 등의 이미지로 업계에 낙인찍힐까 두렵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변호사업계 역시 변호사 채용 시 평판조회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로펌이 밀집해 있는 서초동에서는 “평판조회가 채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이 같은 현실에서 수습처를 옮는 건 수습변호사 입장에서 엄청난 모험일 수 있다. A씨는 “생각보다 업계가 협소하고 폐쇄적이라서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수습처를) 옮기게 될 경우 추후 이력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수습변호사는 로펌 대표와의 갑을관계에서 철저한 ‘을’일 수밖에 없다. 대표로부터 법률사무종사확인서(실무수습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확인서)에 도장을 받지 못하면 정식 변호사로 활동할 수 없다. 확인서를 받지 못하면 개업변호사가 되는 일도 불가능하다. 결국 수습변호사가 정식 변호사가 되려면 대표 변호사의 말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갑을관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 법조계에서 최근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초임변호사가 서초동 로펌 대표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고소장이 지난해 12월 서초경찰서에 접수됐다. 월간중앙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를 통해 6월 11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는 2019년 변시에 합격해 해당 로펌에서 6개월 수습 기간을 거쳐 그해 말 같은 곳에서 정식 변호사로 채용됐다. 성폭력은 정식 변호사로 채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3월 31일 저녁, 가해자는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피해자를 로펌 사무실로 불러 성추행했고, 이틀 후 같은 장소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했다. 이러한 피해는 지난해 6월 2일까지 약 3개월간 사무실, 차량, 피해자의 집 등에서 총 10차례 이어졌다.

결국 피해자는 해당 로펌을 뛰쳐나와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그러나 “만나고 싶다”는 취지의 가해자 연락은 계속됐고, 참다못한 피해자는 지난해 12월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업무상 위력(威力) 등에 의한 간음죄 ▷강제추행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 혐의가 담겼다. 이은의 변호사가 서초경찰서·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에 보낸 공식요청서, 피해자의 호소문과 사건의 전말이 알려진 5월 24일 자 [오마이뉴스] 보도에서 피해자 인터뷰 내용 등을 보면, 피해자가 왜 가해자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로 고소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변호사로 업무상 위력이 수단이 된 성폭력 사건”(변협에 보낸 공식요청서), “가해자에게 여러 번 성폭행에 대해 항의했으나, 가해자는 번번이 저의 항의를 묵살”(피해자의 호소문), “크지 않은 로펌이었고 대표가 일의 분배·월급·채용 등을 모두 결정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거절하거나 피해 사실을 곧바로 신고할 수 없는 상황”(5월 24일 인터뷰) 등이다.

가해자(피의자)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이틀 후인 5월 26일 새벽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수사규칙 제108조와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피해자는 서초경찰서에 “이 사건의 수사 결과와 판단을 구체적으로 고지하는 것은 물론 검찰로 송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초동 로펌 수습변호사, 성폭력 2차 피해 당하기도

이은의 변호사가 서초경찰서·대한변호사협회에 제출한 요청서·호소문에는 “가해자에게 여러 번 성폭행에 대해 항의했으나, 가해자는 번번이 저의 항의를 묵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최현목

이은의 변호사가 서초경찰서·대한변호사협회에 제출한 요청서·호소문에는 “가해자에게 여러 번 성폭행에 대해 항의했으나, 가해자는 번번이 저의 항의를 묵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최현목

피해자가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호사업계 내에서 2차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모 변호사는 사건이 알려진 뒤 ‘판결 전에 (언론에) 보도돼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피해자에게 보냈다. 피해자는 또 현재도 자신이 재직중인 회사 동료와 로스쿨 동기에게 ‘가해자를 아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는 호소문을 내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건의)진실이 성폭행인지, 화간인지 알 수 없다는 질문을 하고 있다”며 “수사 내용이 발표되지 않는 한 위와 같은 질문은 제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현재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에는 수습·초임변호사와 로펌 대표 간 권력관계와 현 수습 제도, 여성 변호사 인권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응축돼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20년 차 변호사 D씨는 “1년 차 변호사는 6개월 수습을 완료했다는 확인서를 가해자에게 받아야 하니, 이미 그때부터 권력관계(갑을관계)가 형성된 것”이라며 “한번 형성된 권력관계는 수습이 끝난 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습·초임변호사의 생살여탈권을 대표가 쥐고 있는 변호사업계의 구조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초임변호사 미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녹취록 일부. / 사진:최현목

초임변호사 미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녹취록 일부. / 사진:최현목

이은의 변호사는 “변호사 개개인에게 부담을 주고, 청년변호사들에게는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의 현 수습 제도는 너무 무책임하다”며 “수습처에서 수습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면 자신의 평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변호사들을 한없이 약자로 만드는 목줄이 되고 있다. 초임변호사들의 취약한 입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현 수습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여성 수습·초임변호사가 변호사업계에서 겪는 부당함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변협에서 발표한 ‘여성변호사 채용 및 근무실태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외형적인 조건(외모·나이)이 채용 시 평가 기준이 됐다고 답한 여성 변호사가 전체 응답자의 58.58%에 달했다. 또 채용 이후 성차별적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57.3%로 조사됐다. 주로 성폭력 관련 사건을 맡는다는 6년 차 여성 변호사는 “수습·초임 여성 변호사 상담을 하다 보면 남성 의뢰인이나 대표가 잘 아는 지인의 술자리에 불려 나가 낯뜨거운 음담패설을 들었다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른 자리에 합석해야 했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5월 28일 “변협 내에서 변호사들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피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징계와 같은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기구 운영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라며 “또한 수습 기간 성희롱·성폭력 사례, 관련 사건 발생 시 대처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교육함으로써 유사시 신입 여성 변호사들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현행 6개월 변호사 수습 제도는 기형적”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수습·초임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외모 평가를 받거나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성차별과 갑을관계에 놓여있는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수습·초임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외모 평가를 받거나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성차별과 갑을관계에 놓여있는 셈이다.

현행 변호사 수습 제도의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개선 방안은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부활부터 현행 수습 제도 개선안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법시험·사법연수원의 부활을 주장하는 쪽은 변호사 급증에 따른 수습처 부족 현상이 지금의 수습·초임변호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변시 합격자도 사법연수원에서 수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실무연수 기관을 사법연수원으로 지정할 경우 과거의 제도로 회귀하는 셈이 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실 현행 6개월 수습 제도가 기형적이라는 것은 오래된 얘기다. 과거 법조인 교육을 전담하던 사법연수원은 2017년 사법시험 폐지 이후 법조인 양성기관에서 법관 연수기관으로 기능이 축소됐다. 문제는 변시 합격자가 해마다 늘어나는 반면, 양질의 로펌에서 수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변호사업계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선망하는 국내 10대 로펌에 취업하는 수습변호사는 1년에 200~300여 명 선이라고 한다. 현재 매년 배출되는 변시합격자(2021년 1706명)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변호사업계에서 이를 두고 ‘수습처 대란’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변협이 수습변호사 연수를 맡았지만, 본래 교육이 주 업무가 아닌 변협으로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지난해부터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이에 변협은 예산과 여건의 제약으로 내실 있는 연수가 어렵다며 올해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에 법무부가 즉각 변협을 비판하자 변협은 5월 27일 200명 제한 조치를 해제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변호사업계에서는 앞으로 변협이 또다시 ‘연수 인원 제한’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로스쿨은 유지하되 현행 수습 제도를 폐지하고 로스쿨 재학 기간 중 수습을 받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법조인협회가 대표적이다. 한국법조인협회는 “우리 협회는 변호사 수습 제도가 폐지돼 악순환 고리를 끊음으로써 변호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대국민법조 서비스를 강화하는 밑거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쿨 제도가 법조인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열정페이·성추행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현행 수습 제도만 없애자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현행 수습 제도를 보완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수습처 무작위 배정 및 모니터링 ▷수습 기간 급여는 법무부에서 지원 ▷수습처를 모니터링하는 멘토링 시스템 ▷수습처에서 일방적으로 수습을 중단하는 경우 제재 조치 등의 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처럼 변호사 수습 제도 개선과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의 사례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만하다. 독일은 1차 국가고시 합격자가 수습 기간 2년을 거쳐야 2차 국가고시 시험 자격을 부여한다. 수습은 법원·검찰청·행정기관 등에서 3개월, 로펌에서 9개월 이상을 연수 받아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이때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일본은 1년 동안 사법연수소에서 일괄적으로 실무교육을 받도록 한다.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별도 과정을 거쳐 연수생이 될 수 있다. 연수생은 민사·형사 재판, 검찰, 로펌에서 각 2개월씩 수습 과정을 밟아야 한다.

변협이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또 실무기관과 사법연수소에서 추가로 각 2개월씩 수습을 거쳐야 비로소 연수를 끝마칠 수 있다. 미국의 로스쿨은 학문보다 실무에 중점을 두고 교육한다. 법조인 ‘직업학교’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일본·독일 등과 달리 별도의 연수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대신 대형 로펌에서 로스쿨과 연계한 실습·학점 과정 등을 통해 도제식으로 교육한다.

현행 변호사 수습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은 국내 법조인 모두가 공감하는 사안이다. 서초동에서 만난 한 40대 변호사는 “변협에서 수습변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지침을 수습처에 보내도 처우 개선에 대한 의무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에게 있기 때문에 지침에 실효성이 없다”며 “변협이 수습·초임변호사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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