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하듯…포토라인 선 MZ세대 성범죄자 독특한 심리

중앙일보

입력 2021.06.25 15:40

업데이트 2021.06.25 17:13

“호기심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어른들이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남학생들의 성을 착취해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혐의(아동ㆍ청소년 성 보호법 위반)를 받는 최찬욱(26). 지난 24일 검찰에 송치되는 최씨의 태도와 발언은 마치 기자회견을 하는 듯했다. 기존의 피의자와 사뭇 달랐다. 취재진 앞에서 스스로 안경과 마스크를 벗으며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모습은 지난해 3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검찰 송치 과정을 떠오르게 했다. 조씨는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지난 4월 ‘세 모녀 스토킹 살인사건’ 김태현(25)은 경찰에 “잠깐만 팔 좀 놔주시겠어요?”라고 말한 뒤 스스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공개했다.

MZ 세대 피의자들의 독특한 언행, 왜?

탤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사기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2명이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탤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사기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2명이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포토라인에서 고개를 떨구고 말을 하지 않는 통상의 피의자들과 이들은 무엇이 다를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제왕적 위치에 있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고양된 상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이어 “20대 초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사회 경험도 많지 않고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들이대는 경험은 처음이니까 이런 부분이 자신한테 불리하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전과범들은 자신한테 유리한 모습이 뭔지 잘 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등 양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도한 자존감, 자기 합리화” 성향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있지만, 나이 탓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공 교수는 “이들의 공통점은 과도한 자존감”이라며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만큼 내 안에 병적인 것들 때문에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 교수는 “김태현, 최찬욱에게 ‘조주빈 효과’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며 “유명인사를 거론하는 등 기자회견 하는 식으로 말했던 조주빈의 행태를 학습하면서 무릎을 꿇는 등의 변형된 패턴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적절한 학습 효과 우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피의자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공 교수는 “‘나도 이 정도 범죄하면 저기에 설 수 있겠네’라는 마음을 부추길 수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신상을 공개하는 정도만 해도 의미는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범죄를 저질러서 영웅이 된 모습처럼 비칠 수 있고, 철없는 어린아이들에겐 범죄를 저지르면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상 공개를 위한 목적이면 주민등록증 등의 사진으로 공개하면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4월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4월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MZ 세대 디지털 성범죄 만드는 사회 구조

이처럼 ‘예측불허’인 MZ 세대 피의자들의 모습은 더 자주 보게 될 공산이 크다. 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하며 총 3575명을 검거했는데, 피의자의 71%(2538명)가 10·20대였다. 20대가 1448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대 이하가 1090명, 30대가 698명이었다.

이수정 교수는 “사회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사이버 공간의 활동이 일상이 되어버린 탓”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 친구들은 이걸 통해서 돈도 벌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온라인은 도덕적 기준이 엄격하거나 치안 활동이 많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무엇이든 돈이 되는 거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MZ 세대는 디지털에 접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시간적 투자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러한 성 범죄물을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적 접근이 어려워 직접 만들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성적 판타지가 있는 사람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범죄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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