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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반바지 입은 이광재 만난 그 곳…"몇등해?" 팩폭도 난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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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진’(엄중·근엄·진지)이라고 불리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춤을 추고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자고 다가오는 공간이 있다. 대선 주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 얘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22일 제페토에 만든 가상 출마선언식장을 공개했다. 이 전 대표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현수막이 걸렸고 잔디밭에 의자도 깔았다. 그의 아바타는 이 공간에 접속한 이용자들을 만나 부지런히 ‘셀카’를 찍으며 대화했다. 이 전 대표는 “코로나19 시대에 현장에서 많은 분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들 사이에 제페토 바람이 불고 있다. 제페토는 여러 가상세계(메타버스)플랫폼 중 한국에서 만든 서비스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케이팝 스타 BTS, 블랙핑크 등이 제페토에서 가상세계를 운영하고 팬들을 만난다. 이들을 만나려 전 세계에서 약 2억명이 제페토에 접속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1020세대이다. 이 때문에 대선 주자들도 청년층을 만날 수 있는 제페토에 몰려들고 있다.

제페토에선 평소에 만나기 힘든 정치인을 만나서 대화가 가능하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제페토에서 만나 셀카를 찍는 모습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제페토에서 만나 셀카를 찍는 모습

중앙일보가 민주당 대선 주자 이광재 의원을 제페토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이 의원은 현실에서 입는 정장은 벗어 던지고 제페토에선 검은색 티셔츠에 핑크색 반바지를 입은 청년 아바타로 등장했다. ‘광재형’으로 불리고 싶다며 아바타 친구로서 반말로 편하게 대화하자는 제안에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졌고, 그와 농담도 나눌 수 있었다.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다.

이 의원에게 ‘86세대를 형이라고 부르는 건 어렵다’고 하자 “테스형(소크라테스)은 3000살인데 나도 형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요즘 여론조사 몇 등 하냐’는 짓궂은 질문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4~8등 왔다갔다 하는데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제페토에서 대선 캠프 출범식…사이버 의원실 만들기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페토에서 대선 캠프 출범식을 하는 모습. [박용진tv 캡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페토에서 대선 캠프 출범식을 하는 모습. [박용진tv 캡처]

민주당 대선 주자 박용진 의원은 21일 제페토에서 대선 캠프 출범식을 열었다. 가상세계에서 지지자를 만난 박 의원은 “큰 사무실, 의전, 줄 세우기 대신에 펄펄 뛰는 정책, 줌(zoom) 회의, 자원봉사가 있는 게 박용진 캠프”라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25일 ‘가상 박주민 의원실’ 개소식을 연다. 박주민 의원과 보좌진은 매주 금요일 오후 1~4시에 제페토에 접속해 이용자의 의견을 취합해 입법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박주민 의원실은 “제페토 이용자 대부분이 10대나 20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학생인권조례 등에 대한 의견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선 대선 출마 계획이 있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페토 이용을 먼저 시작했다. 원 지사는 지난 4일 제페토에 접속해 시민들을 만난 뒤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시민들을 만나니 새로웠다”며 “앞으로 주 2회 이상 제페토에 접속해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가상세계로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이라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팔로워 수가 가장 많은 이낙연 전 대표가 약 200명 수준이고 다른 의원들은 100명 미만이다. 1020세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상세계를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페토 이용자의 대부분이 선거권이 없는 10대라 이곳에서 활동이 표로 당장 이어지기 어렵단 지적도 나온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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